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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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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19.03.16 16:19

주름개미



초미세먼지가 온 나라를 뒤덮던 날 길가에 자라난 들꽃을 찾아서 거리를 쏘다녔다. 가로수 아래엔 냉이와 꽃다지가 자라나 앞서거니 뒤서거니 꽃피고 있다. 보도블록 사이엔 개미자리가 틈새를 메우며 푸르게 자랐고, 건물 모퉁이엔 벌써 꽃이 피고 진 개쑥갓과 서양민들레가 풀씨를 날리고 있다. 가로수 아래에서 자란 냉이는 꽃대가 꼿꼿하지만, 보도블록 틈에 자란 냉이는 허리를 펴지 못한다. 꽃대는 발에 밟혀 굽었지만 그래도 흰 꽃을 송글송글 달고 있다. 꽃대엔 꽃보다 많은 진딧물이 다닥다닥 붙어있고 뿌리 잎 둘레엔 작은 개미들이 바글바글하다. 봄은 이렇게 작은 것들에서 시작된다. 초미세먼지 때문에 사람들은 길을 잃은 듯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헤매는데 봄은 작은 들꽃과 개미를 쫓아서 길을 잃지 않고 우리 발밑에 와 있다.


보도블록 사이에서 자란 냉이 둘레에 모여 있는 개미는 너무 작아서 맨눈으로는 무슨 개미인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도시의 보도블록 틈에서 보게 되는 작은 개미는 대개 주름개미다. 사진을 찍어서 확대해 봤다. 머리는 네모지고 머리와 가슴엔 세로로 주름이 촘촘하고 배는 반짝반짝 윤이 났다. 역시 주름개미다. 머리와 가슴에 난 저 주름 때문에 주름개미라 불린다. 주름개미는 도시도로 주변, 집 둘레는 물론 공원이나 산지까지 전국 어디에서나 산다. 돌을 들췄을 때 가장 많이 보게 되는데, 특히 보도블록 틈새에서 흔하게 볼 수 있어서 보도블록개미라고도 불린다. 


개미를 잘 보려고 냉이 잎을 들췄더니 열 대 여섯 마리쯤 되는 주름개미들이 놀라서 뿔뿔이 흩어졌다. 주름개미는 군체마다 색깔이나 크기가 다양하다. 몸 전체가 적갈색인 군체가 있고 검은색 군체가 있는가 하면 가슴만 적갈색인 군체도 있다. 크기도 2mm에서 3.5mm까지 다양하다. 이런 다양성이 주름개미가 어디에나 잘 적응하는 데 한몫했을 게다.


아직 겨울잠에서 덜 깼는지 느릿느릿 움직이는 주름개미를 보다가 문득 많은 사람이 오가는 이 보도블록 아래에 주름개미 수만 마리가 살아가는 왕국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주름개미는 여왕개미가 여럿인 복수 여왕제인 군체가 많은데 여왕개미가 백 마리가 넘는 군체도 있다고 한다(한국개미/동민수/자연과 생태). 주름개미는 아무거나 잘 먹고 어디에나 잘 적응하고 번식도 빠르다. 게다가 여러 여왕개미가 함께 힘을 합치니 주름개미 군체는 수만 마리에 이르기도 한다.


너무나 많은 수로 불어난 주름개미 군체는 개미 제국이 되어 먹이를 두고 다른 군체와 영역싸움을 자주 한다. 거리나 공원의 보도블록 위에 수천, 수만 마리의 주름개미 떼가 새카맣게 기어 나와 전쟁을 벌이는 모습을 보면 발 딛고 선 보도블록 밑 주름개미 왕국이 터무니없는 생각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이 전쟁은 며칠씩 계속되기도 하는데, 집안까지 쳐들어가서 상대편 여왕개미를 죽이고 알과 애벌레 고치를 약탈해서 한 군체가 사라지는 것으로 끝나기도 한다.


주름개미가 사는 보도블록 틈새엔 주름개미처럼 작은 풀들이 살아간다. 틈새에 적응해서 살아가는 개미자리나 애기땅빈대는 본디부터 크기가 작고 위로 자라지 않는다. 쇠비름이나 괭이밥, 마디풀 따위도 보도블록 틈새에서 자라는 것은 밭이나 들에서 자라는 것과 달리 크기도 작고 위로 자라기보다 옆으로 틈새를 기면서 자란다. 이런 풀들이 피워낸 티끌 같은 꽃은 벌들이 찾아와 꿀을 빨기엔 너무 작다. 이런 풀들의 꽃가루받이는 보도블록 틈새에서 같이 살아가는 작은 개미들이 돕는다. 주름개미는 제비꽃처럼 씨앗에 지방 덩어리가 붙어있는 풀씨를 물어 옮겨서 들꽃이 퍼져 자라는 것을 돕기도 한다. 도시의 보도블록 틈새에도 작은 생태계가 있다. 너무 작아서 눈에 띄지 않는 벌레들과 좁은 틈새에서도 충분히 꽃피고 열매 맺는 작은 들꽃이 만들어 내는 조그만 생태계가 있다. 이 작은 생태계는 자연에 스스로 도시 숲을 만들어가는 첫 작업이다. 초미세먼지로 흐려진 거리에 쭈그리고 앉아 작은 벌레에게 길을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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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그림 강우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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