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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노동자들이 앞장서 싸우겠습니다

비정규직 문제는 문재인 정부의 아킬레스건 

김용균 투쟁에 민주노총은 제 역할 다해야

 79-변혁정치가 만난 사람_차헌호 아사히글라스비정규직지회 지회장02.jpg

[사진: 신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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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5월 아사히글라스 구미공장의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노조를 설립하자, 630일 사측은 178명의 노동자들을 문자로 해고 통보했다. 그 때부터 아사히비정규직지회 노동자들은 기나긴 복직투쟁에 나섰다. 아사히글라스 회사 앞, 구미시청, 정부서울청사, 대구지검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문제해결에 나서지 않는 정부와 자본에 맞서 끈질기게 투쟁해왔다. 최근에는 <1,100만 비정규직 공동투쟁>의 일원으로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구조를 바꿔내는 싸움을 만들어가고 있다. 지난 19, 차헌호 아사히비정규직지회 지회장을 <변혁정치>가 만났다.

 


Q 먼저 아사히글라스 자본에 맞선 동지들의 투쟁부터 이야기 나눌까 합니다. 작년 1227일에는 아사히글라스의 불법파견·부당노동행위에 대해 검찰 수사가 3년 넘게 지체되는 이유를 듣기 위해 대구지검 로비에서 지검장 면담 투쟁을 전개하셨는데요. 그 뒤 상황이 궁금합니다.

A 그 뒤로 진척된 상황은 없어요. 아사히 비정규직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고 해고되고 나서 지금까지 아사히 자본을 상대로 싸운 시간보다 노동부·검찰을 상대로 싸운 시간이 대부분인 것 같아요. 특히 2018년은 한 해 전체를 검찰과 싸웠어요. 왜냐하면 20157월 해고되자마자 고소한 사건을 검찰이 현재 35개월째 처리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에요. 저희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인 거죠. 사실 검찰의 반노동자적인 행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죠. 그렇더라도, 아사히글라스 자본을 대하는 검찰 행태를 보면 도가 지나치다고 느껴집니다. 215일에 근로자지위확인소송 민사소송 선고 결과가 나와요. 결국 검찰은 이 선고에 영향을 끼칠만한 근거를 제공하지 않기 위해 아사히 자본을 기소하지 않고 끝까지 버티는 것이라고 봅니다.

 

검찰의 노골적인 자본 편들기


Q 이토록 긴 시간 동안 사건수사가 지연되고 있는 까닭을 대구지검은 공식적으로 밝히고 있나요

A 검찰은 사안이 매우 복잡하다는 식으로만 말하고 있어요. 저희가 보기에는 국내 최대 로펌 김앤장이 사건을 맡고 있는 데다가, 일본기업인 아사히글라스가 국내에선 아주 작은 기업으로 보여도 실은 일본의 3대 재벌인 미쓰비시 그룹의 자회사로 상당한 영향력을 지녔거든요. 삼성이나 현대처럼 막강한 힘을 가진 재벌이라서 함부로 못 건드리는 측면도 무시할 수 없는 이유라고 봐요.

그리고 또 하나는 불법파견 문제인 거죠. 지금까지 보면 검찰의 불법파견 기소는 가뭄에 콩 나듯 드문 일이었어요. 이게 벌써 10년을 끌어온 재판이고 판례도 이미 나와 있는데도 검찰은 여전히 불법파견을 일삼는 기업들에 계속 무혐의 처분을 내리고 있어요. 그나마 검찰이 대기업 중 유일하게 기소한 사건이 한국지엠 창원공장의 불법파견 문제로 닉 라일리 전 사장에게 벌금 700만 원 부과한 게 전부였잖아요.

구미공단을 보더라도 여기에서 일하는 비정규노동자들의 절대 다수가 불법파견입니다. 아사히 비정규직노동자들이 구미 지역 최초로 비정규직 노동조합을 건설했는데, 만일 저희가 불법파견으로 승소한다면 구미 지역 사업장에 미칠 영향도 수사를 고의로 지연시킨 이유로 추정해볼 수 있겠죠. 그래서 저는 검찰이 이런 제반 상황을 고려해 정치적인 판단을 한 것이라고 봅니다.

 

Q 재정사업에 대해서도 소개해주세요

A 아사히비정규직지회가 현재 35개월째 투쟁하고 있는데요. 자력으로 생계기금을 마련할 수밖에 없는 형편입니다. 전체 운동으로 보면 이것 또한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해요. 명색이 95만 조직인데 해고자들이 생계 대책을 알아서 고민해야 한다면, 과연 그게 민주노조운동의 정신이나 산별 정신에 부합하는지 사실 의문입니다. 어쨌거나 벌써 여섯 번째 지회 재정사업으로 김 판매를 하고 있습니다. 조합원들이 재정의 어려움 때문에 투쟁을 포기하지 않도록 모쪼록 많은 관심과 연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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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조운동의 정신을 바로세워야


Q 민주노조운동이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투쟁하는 비정규직노동자들은 이미 실천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반노동 행위를 서슴지 않고도 금속노조에서 퇴출되지 않고 있는 구미지부 임강순 사태처럼 민주노조운동의 발목을 잡고 있는 일들이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도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A 114일이 금속노조 임시대의원대회인데 이 때 임강순 퇴출 건을 안건 발의할 예정입니다. 사실 작년 7월 금속노조 중집은 노조 채용상근자 임강순에 대해 정직 3개월 처분을 내린 적이 있어요. 이런 솜방망이 처벌에 그친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임강순 사태의 본질이 무엇인지 제대로 이야기되고 있지 않다는 거예요. 특히나 이 문제와 관련해서 조합원들이 오해하고 있는 게 상근 간부가 그저 주식 몇 주 산 것 아니냐는 인식입니다. 우리 조합원들도 다 주식하는데 그게 뭔 대수냐는 식이에요. 그런데, 정확한 팩트는 구미지부 상근 간부가 KEC라는 사업장의 교섭을 담당하고 있었고 그 투쟁을 책임지고 있으면서도 중요한 파업 시기에 KEC의 주식을 대량으로 구매했다는 겁니다. 결국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이런 반노동자적인 작태를 벌인 거죠.

저는 이 사태를 보면서 운동진영 내부의 자정능력이 이미 상실됐다고 생각해요. 정직 3개월 징계 이후에도 당사자의 공개적인 사과나 반성은 아직까지 없습니다. 이게 비단 임강순 개인의 문제만은 아니겠죠. 앞서 조건준 사태도 금속노조에서 있었고, 어쩌면 무너져 가는 민주노조운동의 참혹한 현재 상황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사실 금속노조 현 집행부에서도 발전전략위원회 문서를 통해서 금속노조의 관료화가 심각하다고 스스로도 진단하고 있거든요. 그런 심각한 상황을 인지하고 있다면, 잘못을 바로잡는 노력이 있어야죠. 전국의 많은 동지들이 아닌 건 아니라고 분명하게 얘기해서 바로잡을 수 있도록 함께 노력했으면 좋겠습니다.

 

Q 근래 들어서는 <1100만 비정규직 공동투쟁>을 통해 금속과 공공부문에 속한 비정규직노동자들이 함께 권력과 자본에 맞선 투쟁을 펼쳐오고 있습니다. 공동투쟁에 참여하시면서 느낀 점들에 대해 이야기해주세요

A 무엇보다도 주체들이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하기 시작했다는 데 가장 큰 의의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절실하고 절박한 노동자들끼리 모인 거잖아요. 잘 나가는 노동자들이 아니고, 함께 싸워야 하는 노동자들이 모인 거죠. 사실 각 산별로 모이기도 힘들지만, 산별을 넘어서 금속, 공공, 최근에는 특수고용노동자들까지 함께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소중한 성과라고 생각해요.

또 한 측면으로는 1, 2차 공동투쟁을 진행하면서 조합원들이 자신감을 체득하기 시작했다는 거예요. 예전에는 지방에서 민주노총 집회 올라오면 발언만 듣다 가는 경우가 허다했는데, 이번에 공동투쟁 하면서 힘을 얻었다’, ‘앞으로 계속 해야 한다는 평가들이 많았거든요. 그래서 이제 앞으로 어떻게 공동투쟁을 해 나가느냐가 훨씬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하고요. 특히, 공동투쟁 기간 동안 행정부나 사법부를 주 타깃으로 삼아 싸웠는데 이 투쟁의 잠재력을 확인하는 계기이기도 했습니다. 비정규직노동자들의 문제가 정권에게는 아킬레스건인 셈이죠. 그래서 전국의 비정규직노동자들이 제대로 단결하고 투쟁력을 발휘한다면, 정말로 우리사회를 뒤흔들 수 있는 투쟁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쩌면, 무너져가는 정규직 중심의 노동운동을 바로세울 수 있는 게 비정규직 운동의 확대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결국 관건은 우리 비정규직노동자들이 지금 얼마나 잘 싸우는가에 달려있다고 봐요.

 


바로 지금이 싸워야 할 적기


Q 태안화력발전의 하청업체 한국발전기술에서 일하다가 참변을 당한 고 김용균 동지도 비정규직 노동자였습니다. “내가 김용균이다라고 외치면서 싸우는 비정규직노동자로서 특히 이 투쟁에 대해 고민이 많으실 텐데요. 앞으로 이 투쟁을 어떻게 해나가야 할 거라고 보시나요

A 일단 답답하죠. 민주노총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은 (고 김용균 동지의) 어머님 홀로 민주노총이 떠맡아야 할 역할을 하고 계신 느낌이에요. 김용균 동지의 사망사건 앞에서 민주노총 95만 조합원들이 추모 리본을 가슴에 달고, 선전물을 배포하고, 사업장에 추모 분향소도 차리고, 기본적으로 해야 할 일들이 참 많잖아요. 추모제나 집회를 대중적으로 조직해서 이 문제를 사회 전면에 제기하는 것도 민주노총의 역할이죠. 모든 노동자의 민주노총이고자 한다면 적어도 그런 역할을 자임해야 하는데, 제가 보기에는 그 역할을 전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다행히 비정규직 공동투쟁이 있으니 이 시기에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보려 합니다. 1월이 고비라는 생각이 들어요. 1월 내내 대중투쟁을 잘 조직하고 확대해서, 그리고 요구와 목표를 분명히 해서 한국사회 전체의 목소리로 전면화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전에는 비정규직노동자들이 싸우면 정규직 되고 싶어서 저런다느니 하는 반격이 만만찮았는데, 지금 김용균 사망사건 앞에서 우리 문제를 훨씬 진전시킬 수 있는 정세가 열렸다고 봐요. 바로 지금이 싸워야 할 적기라고 생각해요


인터뷰=임용현기관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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