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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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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를 넘어설 

진지한 대안모색을 시작할 때

 

이주용정책선전위원장

 


1980년대 신자유주의의 기수였던 영국의 총리 마가렛 대처는 티나TINA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다. ‘티나대안은 없다There Is No Alternative라는 문장의 영문 앞 글자를 따서 만든 줄임말이다. 대처가 시장경제의 대안은 없다고 즐겨 주장했기 때문에 이 같은 별칭이 붙었던 것이다. 그리고 1989년 소련을 비롯한 동유럽의 붕괴가 시작되자 역사의 종언자본주의의 최종적 승리가 공공연하게 선포되었다.

그러나 불과 10년 만에 이 거만한 선언들은 대중적 저항에 부딪혔다. 20년간 진행된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곳곳에서 빈곤과 불평등을 심화시키며 1999년경에는 대대적인 반세계화 운동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2008년 세계경제위기는 자본주의의 불안정성을 극적으로 드러냈다. 더 이상 시장이 모든 것을 해결한다는 환상은 유지될 수 없었다. 자본가들이 먼저 자본주의 4.0’을 주장하며 신자유주의가 아닌 이른바 포용적 성장을 말하기 시작했고, 가혹한 구조조정 프로그램으로 신자유주의를 이식하던 IMF가 불평등을 시정해야 한다며 설파하고 다녔다.

문제는, 시장경제의 환상이 깨졌음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은 여전히 대중적으로 논의되거나 수용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령 한국에서 사회주의는 북한 혹은 독재체제라는 등식이 지배적 의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2008년 경제위기 이후 10년이 지난 지금, 변혁당은 사회주의 대중화를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체제에 대한 대안을 구체화하고 대중적으로 논의하는 것이 어느 때보다 절실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2018 정치캠프>에서는 시장경제의 대안을 주제로 한 두 강좌를 진행하면서 진지한 대안모색의 출발점으로 삼고자 했다.

 

협동조합과 사회적 기업은 대안인가?

대처는 총리 재임시절 한 인터뷰에서 사회란 것은 없다. 오직 개인들이 존재할 뿐이다라고 주장한 바 있다. 이는 복지국가를 무너뜨리고 신자유주의를 선도한 대처의 세계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명제였다. 사회보장과 공적 책임은 해체되어 각 개인들의 노력과 책임의 문제로 환원되었다.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기업은 이에 대한 반향으로 부상했다. 구성원들의 자조와 협력에 근거한 공동체, 이윤극대화만이 아닌 사회적 가치와 구성원들의 공존을 모색한다는 기업이라는 이상은 비자본주의적 삶의 양식을 드러내주는 듯했다. 그러나 이번 정치캠프에서 협동조합과 사회적 기업은 대안인가?’ 강좌는 이러한 시도가 신자유주의를 대체하기보다는 자본주의적 양식으로 포섭되면서 신자유주의를 보완하는 구실을 하는 한계를 보여주었다.

자본주의는 사회 전반을 지배하는 소유·생산·분배양식으로 존재한다. 협동조합과 사회적 기업은 이 지배질서 자체를 바꾸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생존하기 위해서라도 불가피하게 자본주의적 양식을 답습하게 된다. 재정기반이 취약하기 때문에 국가나 대기업의 지원 없이는 존속할 수 없거나,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 고용된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예컨대 친환경 유기식품 클러스터를 표방하고 있는 아이쿱생활협동조합 소속 구례자연드림파크는 외주화와 노동조합 탄압 및 표적 징계를 단행하면서 노동자들이 강력하게 반발하며 투쟁하고 있다.

또한 협동조합과 사회적 기업은 국가가 담당해야 할 공적 책임을 특정 공동체 구성원들이 자조를 통해 해결하도록 하거나 시장을 통해 제공함으로써 오히려 공공서비스의 시장화라는 신자유주의의 기조에 발맞추게 된다는 문제도 있다. 신자유주의는 대처의 언급처럼 사회 자체를 완전히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나름의 원리대로 사회를 재조직한다는 것이다. 가령 문재인 정부는 사회적 경제 활성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협동조합과 사회적 기업을 적극 육성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한 바 있는데, 이는 취약계층에 대한 고용과 복지서비스 등 국가가 책임져야 할 영역을 민간과 시장에 이전시키는 근본적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협동조합과 사회적 기업은 선의나 취지와는 무관하게 자본주의에서 외딴 섬처럼 존재할 수 없으며 그 질서로 편입되는 한계를 드러낸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자본주의적 소유·생산·분배양식을 완전히 바꾸는 대안적 질서를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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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민주적 계획경제를 말하자

사회주의는 바로 그 대안질서로 등장했지만, 현실사회주의의 붕괴와 함께 실패한 실험으로 규정되고 말았다. 하지만 자본주의 시장경제도, 소련식 명령경제도 거부하면서 대안질서를 모색하려는 논의는 꾸준히 지속되었다. ‘다시, 민주적 계획경제를 말하자강좌는 새로운 사회주의의 상을 구성하고자 했던 논쟁들을 정리하면서, 대안질서가 대중적 설득력을 얻기 위해서는 현실사회주의의 한계와 문제점을 극복할 사회주의 경제의 원리를 구체화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제기했다.

1980년대에 이르러 관료주의적 명령경제에 대한 비판과 함께 사회주의의 개혁방안으로 계획경제를 버리고 시장경제를 전면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력히 떠올랐다. 계획을 고집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비대한 관료집단과 명령경제를 불러올 수밖에 없으며, 민주적인 경제계획은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시장경제로의 전환은 설령 기업의 법적인 소유형태를 국유 혹은 사회적 소유로 남겨둔다 하더라도, 생산과 분배에서 이윤논리를 도입함으로써 실업과 불평등을 낳는 등 자본주의의 모순이 그대로 드러난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시장사회주의에 반대했던 논자들은 시장과 이윤원리도, 관료적 통제도 거부하면서 노동자들과 사회구성원들이 민주적으로 경제를 계획하는 체제를 구상했다. ‘민주적 계획경제혹은 참여 계획경제라고 부르는 이 흐름은 기업의 소유구조를 노동자와 지역주민 등 이해관계자들이 공동으로 소유하는 사회적 소유로 바꾸고, 노동자를 비롯한 사회구성원들이 다양한 층위로 조직되는 평의회를 통해(가령 부서-직장-산업평의회, 마을-지역-전국평의회 등) 자신들의 필요를 수합하고 생산을 조정하는 모델을 제시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할 수도 있고 계획이 현실에서 어긋날 수도 있지만, 이는 관료집단의 명령이나 냉혹한 시장논리에 의해 조정되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들이 스스로 책임지는 민주적 의사결정과정에 의해 조정된다.

물론 이론적으로 아무리 완결적인 민주적 계획경제 모델을 만들어낸다 하더라도, 자본주의를 거부하고 새로운 질서로의 이행을 추동할 대안적 주체들의 투쟁과 실천이 없다면 모델은 공상에 그칠 수밖에 없다. , 민주적 계획경제에 대한 탐구는 그것이 어떻게 현실가능한지에 대한 구체화작업과 동시에, 자본주의가 배태한 위기 속에서 이 사회의 노동자들과 민중이 어떤 투쟁을 만들어가야 하는지에 대한 실천적인 이행전략의 과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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