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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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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의 균등으로 포장한 

기간제노동자 집단해고

 

이영호부산

 



공정’, ‘기회의 균등요즘 부쩍 많이 오르내리는 말이다. 특히 젊은 층이 매우 민감하다. 지난 동계올림픽 때 여자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구성을 둘러싼 공정성 논란이 대표적인 사례다. 후보 때부터 공정사회를 전면에 내세웠던 문재인 정부는 관행적으로 남북 단일팀을 추진하다 혼쭐이 났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 중인 비정규직노동자 정규직 전환 과정에도 공정의 잣대가 비정규직 노동자들 눈에 피눈물을 맺히게 하고 있다. 바로 부산지하철 기간제노동자 얘기다.

 

사람이 아닌 자리의 정규직화

2017년이 끝나갈 즈음, 부산지하철 노사는 문재인 정부의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일정에 맞춰 비정규직 업무 정규직 전환에 합의했다. 그로부터 1년쯤 지났을까? 서울지하철에서 무기계약직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을 둘러싸고 일부 정규직들이 반발하는 등 적잖은 논란이 일었다. 공채시험을 거치지 않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무분별하게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은 불공정하다는 주장이 일부 젊은 정규직을 중심으로 제기된 것이다. 이들은 정규직 전환 반대 모임을 만들고 조직적으로 대응했다. 그럼에도 서울지하철노조 당시 집행부는 흔들리지 않고 무기계약직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을 이끌어냈다. 부산지하철 역시 비정규직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을 달갑지 않게 여기는 정규직들이 의외로 많다. “수십 대 일의 경쟁을 뚫고 들어온 나는 뭐냐?”며 박탈감과 자괴감이 든다고 말한다. 정규직 전환 반대 이유로 가장 많이 나오는 얘기가 비정규직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은 무임승차라는 것이다. 공채시험을 거치지 않고 비정규직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은 반칙이고 편법이라는 주장이다.

그래서였나? 지난해 말 부산지하철노조 집행부는 사측과 함께 비정규직노동자들을 배제하는 결정을 했다. 내용인즉, (직접고용)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과 관련해 현재 기간제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는 업무를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는 것이다. 사람이 아닌 소위 말해 자리(업무)의 정규직화. 현재 근무 중인 기간제노동자들을 모두 해고시키겠다는 것으로 서울지하철 노사 합의와 결이 완전히 다르다.

 

공정사회라는 환상

이러한 합의 배경엔 2016년부터 이어져온 구조조정 철회투쟁이 있다. 사측은 2017년 초 단체교섭이 진행되는 와중에 일방적으로 구조조정을 자행했다. 이 때 정규직이 일하던 차량 경정비, 모터카 운전, 일부 통신설비 유지업무에 기간제노동자들을 배치했다. 노동조합은 사측의 구조조정 강행을 규탄하며 구조조정 철회를 요구했지만, 이미 2016년 세 차례나 파업투쟁을 벌였던 노동조합은 이를 환원할 뾰족한 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때마침 문재인 정부의 공공기관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추진 발표는 사측이 일방적으로 강행한 구조조정을 되돌릴 기회로 인식됐다.

그랬다. 노동조합 집행부는 문재인 정부의 공공기관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을 기회삼아 구조조정 철회라는 성과물을 챙기기 위해 기간제노동자들을 희생양으로 삼았다. 부산지하철노조가 정규직 이기주의 전형을 보여준 셈이다. 이것이 바로 문재인 정부가 말하는 노동존중의 실체다.

공공기관 비정규직 제로시대 선언이니, ‘정규직 전환이니 잔뜩 희망고문만 시키고선 집단해고라니 세상천지에 이런 사기가 어디 있나? 기간제노동자들을 집단해고하고 정규직 전환이라고 우기는 나라. 이게 문재인 정부가 말하는 공정사회인가?

그렇다. 애당초 자본주의 사회 자체가 공정하지 않다. 자본주의에서 공정사회란 효율과 경쟁으로 대표되는 자본주의 착취 기제가 빈틈없이 작동되는 사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공개채용시험이 공정이나 기회 균등을 보장하지 않는다. 경쟁을 전제로 하는 순간 공정은 본래의 의미를 상실하고 착취의 합리화만 남는다. 공정, 기회의 균등, 공채 등등 이 모든 것들은 자본주의 착취체제를 유지하고 작동시키는 이데올로기이고, 도구나 수단일 뿐이다.

물론 공정을 강조하는 사람들도 자본주의 자체가 공정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다. 부산지하철 기간제노동자들이 정규직 전환을 기대하지 않듯이 어쩔 수 없는 일로 치부하고 순응하는 것일 따름이다. 바로 촛불투쟁의 한계다.

결코 공정하지 않은 공정사회에서 버림받은 부산지하철 기간제노동자들은 7개월째 집단해고 철회투쟁을 진행 중이다. 비록 아직 소수지만 부산지하철 정규직 조합원들도 기간제노동자들과 함께 지난 2월부터 6개월째 하루도 거르지 않고 사업장 내 피켓팅을 진행하고 있다. 정규직 전환을 달갑지 않게 여기며 마음의 문을 열지 않고 있는 정규직 조합원에게 호소하는 아주 작은 움직임이다. 그러나 바위를 뚫는 물방울처럼 변혁은 여기서부터라는 마음가짐으로 또 다른 하루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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