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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할 권리, 왜 만들어졌고

어떻게 보장받아야 하나


고근형학생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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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PD수첩 화면 갈무리] 



주거권이란 무엇인가를 정의하기에 앞서, 주거권이 나타나게 된 배경을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세상에 선험적으로 주어지는 권리는 없듯이, 주거권도 노동자민중의 투쟁 속에서 탄생한 것이기에 그렇다. 대개의 경우, 권리는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의 투쟁 속에서 피지배계급이 스스로의 투쟁을 정당화하기 위해 만든 개념이다. 소유권을 비롯한 인권의 개념들이 부르주아 혁명의 과정에서 탄생한 것처럼 말이다. 마찬가지로 주거권이라는 개념 역시, 인간다운 주거생활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의 과정에서 탄생한 개념으로 파악하는 것이 옳다. , 주거권은 역사적으로 노동자민중의 주거생활에 꼭 필요한 조건을 정의한 것이며, 그렇기에 사회적으로 보장함이 마땅하다는 것이다.

 

한국사회의 자본주의적 발전과 궤를 같이 한 주거운동

1960년대 경제개발정책으로 시작된 농촌 인구의 도시로의 대규모 인구 유입은, 정부의 주택정책 부재로 인해 주거공간이 확보되지 못한 상태에서 대도시(특히 서울)를 중심으로 무허가 정착촌이 급속히 확산되었다. 서울로 유입된 인구는 하천, 임야, 제방 등의 부지에 정착하며 도시빈민을 형성한다. 1960년대 후반부터 도심 정비를 하면서 무허가 정착지에 대한 대규모 철거정책을 실시하게 된다. 광주대단지사건*은 이러한 대규모 철거에 맞서 이주민들이 반발하며 저항한 것으로 주거권 운동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무허가 정착지에 대한 정책은 강제철거에 따른 이주와 현지개량 위주로 흐르다가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합동재개발, 공영개발 등 각종 재개발사업을 통해 주택시장을 확대하는 정책으로 변화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세입자(도시빈민)에 대한 대책이 세워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따라서 세입자 대책이 주요 쟁점으로 부각되며, 민중운동의 일부로서 철거민운동이 본격화된다. 이 운동의 성과로 영구임대주택 정책이 80년대 말에 도입되었으며, 재개발지역의 세입자대책도 이주비에서 방 한 칸 입주권을 거쳐 사업구역 내 공공임대주택을 건립하는 것으로 발전하게 된다.

90년대에 들어서면서 주거권이란 개념이 확산되기 시작한다. 90년대에도 각종 재개발사업은 계속 진행되었는데, 공공임대주택 공급이 제도화되었지만, 여전히 철거 이후 공공임대주택이 완료되기까지 임시주거시설문제와 공공임대주택에 입주하지 못하는 철거민 문제가 주요 쟁점이 되면서 철거민 투쟁은 지속된다. 이와 함께, 개발지역에서 쫓겨난 이들이 도시 외곽에 비닐하우스촌을 형성하면서 이들의 주거권 및 생활권 문제가 쟁점으로 부상한다. IMF 경제위기 이후 급속히 증가한 홈리스 및 쪽방거주자의 문제도 제기된다. 이처럼, 세입자의 주거를 위협하는 개발 문제와 주거빈곤 문제로 한국사회의 주거 문제를 집약할 수 있다.

오늘날에도 용산참사 등 개발과 철거에 맞선 투쟁, 주거빈곤에 맞선 투쟁은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 이 밖에도 학생주체들이 대학가 주변 대학생 주거권 실현을 위한 주거운동을 시도한 바 있으며, 장애인이주노동자 등 소수자들의 주거생존 보장을 위한 주거운동이 존재했다. 또한 자조적 공동체를 통해 주거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들도 존재한다.

 

주거권 - 주거문제 해결을 위한 절박한 요구

이러한 기층의 운동을 바탕 삼아 주거권의 내용을 마련할 수 있다. 우선, 도시 개발과 그에 따른 강제퇴거에 맞서 주거의 안정을 보장해야 한다. 또한 주거빈곤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저렴한 가격, 주거에 필요한 시설(수도, 하수 등)과 쾌적한 환경, 장애인소수자에 대한 접근성 등이 갖춰져야 한다. 주거권이란 다름 아닌 주거 문제 해결을 위한 요구들을 종합한 것이다. 주거권에 대해 가장 널리 공유되고 인정되는 내용은 1991년 발표된 유엔사회권위원회의 적절한 주거의 권리에 관한 일반논평4”인데, 주거운동에서 도출되는 요구안들을 포괄한다. 아래의 표**를 통해 그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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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권 실현을 위한 조건으로서의 공공주거

앞서 주거권이 주거생존을 위한 노동자민중의 투쟁 속에서 나온 요구를 집약한 것임을 확인했다. 그렇다면 주거권을 누가 어떻게 실현하느냐가 문제로 남는다. 무언가를 권리로 확인한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그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을 확인한다는 뜻이며, 따라서 그 사회는 인정된 모든 권리를 보장할 의무를 갖는다. 마찬가지로 주거권 역시 보장의 주체는 사회이며, 오늘날의 경우 국가가 보장의 주체가 된다. 더욱이 주거권의 특성상 그것의 온전한 실현을 위해서는 집은 사유재산이 아닌 공공재라는 인식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러한 주거공공성은 다음과 같은 원리***를 가져야 할 것이다.

첫째, 집을 생산하고 분배하고 점유하는 과정에 공공의 개입이 필요하다. 이것은 시장에 의한 생산과 분배를 반대하는 데서 출발한다. 일차적으로 주거권 실현을 위한 의무는 정부 당국이 져야 한다. 이 때 공공의 개입이란 현실적으로 국가개입으로 드러날 수 있다. 여기에서 국가의 개입은 자본의 질서를 옹호하는 현재의 국가권력이 아닌 민중적 통제에 기반한 실질적인 민주성을 확보해야 한다. 특히 취약집단 당사자들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하는 것이 관건이다.

둘째, 적절한 수준, 즉 인간다운 삶을 충족하는 수준이어야 한다. 주거의 수준을 평가하는 지표는 여러 가지가 있다. 물리적 성질과 필수서비스의 공급, 기반시설의 확보, 비용부담 등 모든 것이 인간다운 삶을 충족할 수 있어야 한다. 최저주거기준이 실질적으로 주거현실을 바꿀 수 있는 기준이 되도록 하는 것뿐만 아니라 유도주거기준 등 적절한 주거에 대한 기준을 마련하는 것 역시 필요하다. 또한 적절한 수준은 더욱 큰 것, 더욱 새것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생태적 시각을 견지해야 하며, 특히 여성과 소수자의 시선으로 마련될 필요가 있다.

셋째, 접근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경제력이나 사회적 신분, 신체조건 등과 상관없이 필요한 주거를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비용부담으로 인한 접근의 제한, 비장애인 중심의 공간 설계 때문에 발생하는 제약에 대한 대안이 모색되어야 한다. 접근성의 확보는 ‘37세 비혼장애여성에게 팔지 않음이라는 팻말을 붙이지 않는 것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장애인들이 적절한 주거에 접근할 수 있도록 장애인을 위한 설계와 건축이 장려되어야 하고 비용으로 인한 장벽을 없애기 위한 적극적인 정책이 입안되어야 한다. 또한 가구 중심으로 주거의 권리를 인정하는 제도도 검토되어야 한다.

넷째, 형평성을 추구해야 한다. 특정한 집단이나 개인이 부당하게 수준이 낮은, 부당하게 수준이 높은 주거를 누려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똑같은 집에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적절한 주거를 누리는 데에 서로 다른 집단이나 개인이 처한 조건에 따른 필요가 반영되어야 한다. 시장에서의 생산과 분배는 이윤에 따라 이루어지지만, 공공에 의한 생산과 분배는 필요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 가구원 수가 많으면 좀 더 넓은 집이 필요할 테고 휠체어장애인이 있으면 턱이 없고 편의시설이 갖추어진 집이 필요하다.

이상의 원리 중에서 첫째 원리, 즉 국가의 책임을 확인하는 원리는 다른 나머지 원리를 구현하는 필요조건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공공주거는 주거권 실현의 전제이자, 필요조건이다.

 

* 1971년 박정희 정부가 서울시 빈민촌 정리를 위해 빈민 10만여 명을 광주대단지(지금의 성남시)로 이주하게 하였으나, 정작 이주지역에 주거시설이 마련되어 있지 않고 오히려 토지대금 납부를 요구하자 성난 이주민 10만여 명이 대단지 일대를 방화하고 서울을 습격한 사건. 시위가 워낙 격렬하여 사건 발생 3일 만에 박정희 정부가 주민들의 모든 요구를 수용함으로서 사건이 진정된다.

** 미류, <주거권과 주거공공성 실현을 위한 모색>, 주거권 기획팀,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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