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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자본의

저임금 고착화 시도를 분쇄하자

 

임용현기관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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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벽두부터 최저임금 인상 역풍이 온 나라를 휩쓸고 있다며 보수언론과 재계의 아우성이 드세다. 인건비 부담으로 중소영세사업장의 출혈이 심각하고, 심지어 물가 상승과 고용 위축의 악순환까지 우려된다는 주장도 심심찮게 들려온다. 이같은 주장에 화답이라도 하듯 최근 서울시내 주요 대학들은 비용 절감을 이유로 청소노동자들에 대한 해고 통보나 초단기 청소 알바를 대체인력으로 모집하는 방식 등의 구조조정 방안을 잇달아 내놓았다. 역대급 인상 폭으로 저임금 노동자들에게 새해 큰 선물이 될 줄로만 여겨졌던 2018년 최저임금이 하루아침에 폭탄으로 둔갑한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 효과를 상쇄시키려는 자본의 꼼수가 곳곳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지만, 정부여당의 표정은 담담하기만 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10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최저임금 인상이 일자리를 줄일 것이라는 염려들이 있는데, 정착되면 경제가 살아나면서 일자리가 늘어날 것이라고 공언했다. 이렇듯 최저임금 인상 효과에 대한 낙관과 비관이 엇갈리고 있는 가운데, 직접적인 이해당사자인 저임금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고용과 임금 양 측면에서 불안정성이 오히려 증폭되고 있다.

 

극에 달한 자본의 꼼수

노동계가 요구했던 최저임금 1만 원에는 못 미치지만, 어쨌거나 두 자릿수 인상률로 더 나은 일자리를 바랐던 저임금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새해 들어 예상치 못한 변화들을 마주하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임금체불과 일터 괴롭힘 등 사업장 내 다양한 불공정한 관행들을 뿌리 뽑기 위해 만들어진 단체인 <직장갑질119>가 새해 첫 주 제보된 최저임금 갑질사례들을 모아 발표했다. 그런데, 지난 12일부터 6일까지 <직장갑질119>에 제보된 56건의 사례 중 절반 이상(30, 53.6%)이 상여금을 일방 삭감하거나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포함하는 등의 방식의 상여금 갑질을 저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식대, 교통비, 근무평가수당 등을 없애 수당에 포함하는 수당 갑질12(21.4%)에 달했고, 휴식시간을 서류상으로 늘려 소정근로시간을 줄이는 휴게시간 갑질8(14.3%)을 차지했다. 최저임금이 오르자 사용자들이 각종 상여금이나 수당을 기본급에 녹이는 방식으로 임금체계 개편을 서두르고 있는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효과를 억제하기 위한 자본의 갑질은 이에 그치지 않았다. 최저임금 인상을 빌미로 아예 구조조정(해고, 강제적 전환배치 등)에 나서는 경우도 생겼다. 견출지스티커라벨 등 사무용품을 만드는 중소업체 레이테크코리아는 지난해 11, 제품 포장 일을 맡고 있던 여성노동자 21명에게 느닷없이 영업부서로 발령하겠다고 통보했다. 짧게는 5, 길게는 10년 가까이 포장업무를 했던 노동자들을 갑자기 영업부서로 이전시키겠다니, 사실상 퇴사를 종용하는 조치였다. 그것도 모자랐는지 레이테크 사측은 2년 전 노조(금속노조 레이테크코리아분회)와 맺은 고용안정협약을 파기하고 포장부서 외주화에 나섰다. 이 외에도 최저임금 인상을 빌미로 저임금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을 더욱 악화시키는 자본의 갑질 행태는 연말연시를 기점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그보다 더한 정부의 뒤통수

더욱 기막힌 사실은 소득주도성장을 위해 최저임금 대폭 인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던 문재인 정부가 최저임금 무력화 흐름을 앞장서 주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얼마 전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은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최저임금 인상 효과를 억제하기 위해 월 243시간으로 되어 있는 소정근로시간을 월 209시간으로 줄이려고 했다. 이렇게 되면 임금 총액은 변동 없이 시급만 올라간다. 이를테면, 기본급이 160만 원일 때 소정근로시간을 월 243시간으로 나누면 시급 6,584원이지만 월 209시간으로 나누면 7,655원이 되는 식이다. 문재인 정부 소득주도성장론을 뒷받침하는 최저임금의 단계적 인상이 교육부에 의해 무력화되고 있는 것이다(그나마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완강한 투쟁으로 교육부의 최저임금 무력화는 일부 막아냈지만 아쉽게도 소정근로시간의 축소 자체는 저지하지 못했다).

중앙행정기관인 교육부조차 제멋대로 임금체계를 손질해 저임금의 덫에 빠진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지를 개선할 의지가 도무지 안 보이는데, 민간 기업들의 최저임금 꼼수에 대한 정부당국 규제는 두말할 것도 없다. 더구나, 2018년 최저임금이 16.4%로 오르면서 사용자들의 이같은 꼼수는 민관을 막론하고 더욱 노골화할 게 뻔하다.

정부의 뒤통수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두고 재계의 압박이 거센 가운데, 상여금, 중식비, 교통비 등 고정성 임금을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포함해야 한다는 정부여당 핵심 인사들의 발언이 최근 줄을 잇고 있다. 헌법 32조는 국가는 근로자의 고용의 증진과 적정임금의 보장에 노력하여야 하며,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최저임금제를 시행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생계비 수준에도 모자라는 법정 최저임금을 국가가 갖은 수단을 동원해 임금상승을 억제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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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10일 청와대 앞에서 열린 '최저임금 인상꼼수 규탄, 문재인 정부 편법 종용 중단, 편법 사업장 엄벌 촉구 최저임금노동자 기자회견' [사진 : 노동과세계(신동준)]


최저임금 투쟁, 지금 당장 시작하자

최저임금 인상으로 가계소득의 증대, 내수경제의 활성화를 꾀하겠다는 정부의 호언장담에도 불구하고, 최저임금 인상 효과는 이렇듯 정부와 자본의 각종 꼼수로 무력화되고 있다.

공공부문 81만 개 일자리 창출,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 인상 등 양질의 일자리 확충을 통해 경제성장의 선순환 모델을 구축하겠다는 정부 구상이 파탄 난 결정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이같은 경제회복을 위한 대전제는 천문학적인 재원을 어떻게 마련하느냐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국 자본의 이윤을 침해하지 않고서는 노동자들의 고용과 임금 문제를 해결할 방도는 없는 셈이다. 문재인 정부의 딜레마는 여기에 있었다. 겉으로는 노동자들에게 장밋빛 미래를 약속하지만, 실은 이를 실현할 방도도, 의지도 문재인 정부는 갖고 있지 않았다!

따라서 관건은 최저임금을 둘러싼 계급투쟁에서 문재인 정부가 쥐고 있는 주도권을 민주노조운동이 어떻게 탈환하느냐에 있다. 이를 위해서는 다음의 목표 아래 최저임금 투쟁의 주체를 결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우선, ‘조삼모사식의 기만적인 정부 대책의 허구성을 가감 없이 폭로해야 한다. 최저임금 인상이 도리어 저임금을 고착화하고 노동강도를 강화하는 현실은 재계와 보수언론만의 책임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의 최저임금 로드맵은 자본의 양보가 아니라 노동의 양보를 전제하고 있음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래야만, 정부의 사회적 대화 제안에 종속되지 않고 노동계급의 독립적인 투쟁을 전개할 수 있다.

둘째, ‘적정 생계비의 원칙을 굳건히 지켜야 한다. 자본의 지불능력에 따라 임금 규모가 수축한다면 노동자들의 생활임금은 결코 보장할 수 없다. 노동자들이 먹고 살 만한 수준으로 최저임금을 대폭 상승시킬 수 있도록, 적정 생계비 요구를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등 최저임금 무력화 공세, 노동법 개악 시도에 맞선 투쟁을 전면화해야 한다. 또한, 최저임금위원회라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벗어나, 저임금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보다 적극적으로 표출될 수 있는 사회적 운동을 건설해야 한다. 해마다 최저임금 동결을 외치는 사용자위원들, 그리고 노동자의 적정 생계비보다 노--3주체 간 적정한 타협점에만 관심 있는 공익위원들이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방식을 이제는 바꾸자. 저임금을 강요하는 정부와 자본에 맞서기 위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공동투쟁을 조직하는 것보다 더 큰 위력을 발휘하는 모종의 해법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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