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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18.01.15 11:02

비장과 세계의 보편적 연관

 

박석준한의사(흙살림동일한의원장, 동의과학연구소장)

 


비장은 오행으로 보면 중앙에 해당한다. 동서남북 사방의 가운데[중앙中央]에서 나오는 기는, 하늘에서는 습기가 되고 땅에서는 흙이 된다. 여기에서 된다[]는 것은 반드시 그 기가 습기나 흙과 같은 다른 사물로 바뀐다는 뜻이라기보다는 서로 같은 기로 변한다는 뜻이다. 기라고 하는 관점에서 같은 것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남귤북지南橘北枳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남쪽의 귤이 북쪽으로 가면 탱자가 된다는 말이 아니라 귤의 기가 탱자의 기로 바뀐다는 말이다. 이처럼 중앙의 기는 몸에서는 살이 되고 장부에서는 비장이 된다. 색으로 보면 누런색이고 음에서는 궁이며 소리로는 노래가 된다. 누런색은 비장의 기와 같아서 누런색을 보거나 먹으면 비장의 기가 좋아진다. 고운 노래를 들으면 비장의 기가 좋아진다. 사람들이 음식을 먹으면서 음악, 그 중에서도 부드러운 소리[궁성宮聲]를 들으려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비장의 기는 어떻게 작용하는가

그러나 중앙의 기가 요동을 치면 병이 생긴다. 그 대표적인 것이 딸꾹질이다. 딸꾹질은 위장胃臟의 기가 거슬러 올라가는 것인데, 위는 비장과 서로 표리관계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비장의 기가 요동치면 위의 기가 거꾸로 올라 딸꾹질을 하게 된다.

비장은 입을 통해 외부와 서로의 기를 주고받는다. 간단히 말하면 입으로 음식을 먹고 입으로 소리를 낸다. 이 소리는 일반적인 말도 있지만 딸꾹질 소리 같은 것도 포함된 것이다.

비장의 기를 기르는 맛은 단맛이다. 그래서 비장의 기가 허한 사람은 자꾸 무언가를 먹으려 하고 그 중에서도 단맛을 찾는다. 속이 허하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단맛으로 비장의 기를 기르려는 것이다. 그렇다고 아무 것이나 자꾸 먹어서는 배가 든든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아무 것이나 마구 먹으면, 특히 단 것을 많이 먹으면 비장을 더 상하게 한다.

비장은 흙과 같이 모든 것을 떠받치고 있어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비장의 기가 약하면 작은 변동에도 잘 흔들린다. 그래서 차를 타거나 배를 타면 멀미를 한다. 또한 비장은 흙과 같이 무엇이든 잘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런데 비장의 기가 약하면 잘 받아들이지 못하고 거꾸로 올린다. 헛구역질을 하는 것이다. 흔히 비위가 상한다고 하는 말은 바로 비장의 기가 약한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비위가 약한 사람은 더럽거나 이상한 것을 보기만 해도 속이 거꾸로 뒤집힌다.

사유과정에서 비장의 역할은 곰곰이 따져보는 것[]이다. 앞뒤와 좌우를 살펴서 어떨 지를 가늠해보는 것이다. 그래서 비장의 기가 튼튼한 사람은 이렇게 저렇게 따져보고 앞으로 나아가지만 비장의 기가 약한 사람은 따져보기만 하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한 가지 생각에만 골몰하게 된다. 그러면 비장의 기를 자꾸 소모하게 되어 비장은 더 약해진다.

또한 비장은 우리 몸의 진액에서 보면 침이 된다. 맛난 음식을 보거나 냄새를 맡으면 군침이 도는 것은 그것이 비장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비장의 기가 튼튼한 사람은 대개 냄새를 잘 맡는데 특히 음식 냄새를 잘 맡는다. 그래서 냄새를 잘 못 맡는 사람은 코만이 아니라 비장의 상태를 살펴야 한다.

비장이 튼튼한 지는 입술을 보면 알 수 있다. 입술이 두텁고 경계가 뚜렷하며 굳게 다물고 있으면 대개 비장이 튼튼한 것이다. 반면 입술이 얇고 가늘며 경계가 분명하지 않으면서 자주 벌리고 있으면 비장이 약한 것이다.

비장에 가장 좋은 곡식은 기장이고, 가축은 소이며, 동물은 털 없는 동물[]이고, 과실은 대추이며, 채소는 아욱이다. 비장이 허한 사람에게는 소고기가 좋지만 반대로 실한 사람에게는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다. 실한 것을 더 실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음양의 오르내림은 계절의 순환과 같다

비장의 숫자는 5인데, 이는 순환하는 시간, 원운동을 하는 시간이라는 사유체계에서 나온 숫자이다. 숫자란 결국 자연을 추상한 것이다. 과학이 자연을 추상한 것처럼 수학은 과학을 추상한다. 그러므로 무엇을 왜 추상하는지에 따라 숫자, 나아가 수학은 달라진다.

동아시아의 전근대에는 010이 없었다. 모든 숫자는 1에서 시작하여 9에서 끝난다. 9에서 끝나면 다시 1이 되는 것이다. 이는 전형적인 농경사회의 숫자다. 전근대의 농사에는 직선적인 시간이 없다. 봄여름가을겨울이 지나 다시 봄이 와야 다시 농사를 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시간이 무한히 발전한다면 농사를 지을 수 없다. 따라서 직선적으로 무한히 전개되는 숫자는 의미가 없다(물론 천문이나 다른 분야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1에서 9 사이의 가운데가 5이다. 1에서부터 생기기 시작하여 점점 커지다가 4에서 극에 이르고 5에서 숨을 고른 뒤 9를 향해 줄어든다. 커지고 줄어들고 하는 것은 기인데 그 중에서도 양기陽氣를 기준으로, 봄의 양기가 점점 커지다가 늦여름에서 숨을 고른 뒤 가을에 접어 들면서 양기가 줄어드는 과정을 추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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