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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와 토지공개념

 

정경원노동자역사 한내

전국회의는 “독점재벌과 대토지소유자의 토지를 국가가 수용 국유화하라

“토지공개념 입법안을 확대 실시하라”는 요구를 내걸었다. (1989.10.27.)

사진은 전국회의 주최로 열린 토지공개념과 노동자주택 문제 공청회

[사진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얼마 전 추미애 의원이 토지공개념을 언급한 것과 관련, 하태경 의원이 사적 소유 자체를 부정하는 토지 공산주의자라며 당 대표 제명을 촉구했다. 하지만 최근 국회와 SBS가 공동으로 실시한 개헌 관련 공동여론조사에서 개헌을 할 경우 토지공개념을 도입해야 한다는 응답률이 61.8%였고 반대하는 응답률은 31.0%였다. 토지공개념 논의가 제기된 것은 1989년 노태우 정권 때였고 이후 2005년 부활 논의가 진행된 적이 있다. 당시 관련법들이 만들어지기도 했지만 자본의 반대로 제대로 시행되고 있지 않다. 토지공개념은 개헌 시 주요 이슈 중 하나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에 대해 1989년 노동자들은 어떤 입장을 가졌는지 돌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토지공개념, 누구를 위한 것이었나

토지공개념은 1989년 논의되어 1990년에 도입됐다. 전국의 땅값이 무섭게 상승한 데서 시작된 논의였다. 1988년 한 해 전국의 땅값은 28.4%, 1989년 상반기에만 20.5% 상승했고 그 결과 집값은 19877.3%, 198818.0% 올랐다. 전세가격도 1987년에는 18.3%, 1988년 상반기에만 14.6% 상승했고 19898월 이후 전세가격은 지역에 따라 10%~30% 가량 상승했다. 노동자들과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던 전세가상승률이 임금인상률과 물가상승률을 초과해 노동자들의 생활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었고 이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었다.

당시 체제변혁 요구를 막기 위해 토지공개념을 실시해야 한다는 게 정부가 내세운 입장이었다. 한 번 엎은 정권을 또 못 엎을 리 없다는 위기감을 반영한 것이다. 실제 1989MBC와 동서경제연구소가 공동 실시한 토지공개념 관련 여론조사의 결과 적극찬성(33%)과 찬성(37.3%)을 합친 비율은 70.3%로 적극반대(3.2%)와 반대(9.2%)를 합친 12.4%보다 압도적으로 높았다.

하지만 정부가 내세운 토지공개념 논의는 노동자민중을 위한 것이 아니었음이 드러났다. 부동산 투기 때문에 온 나라가 들끓고 있던 때인 1989년 상반기에 재벌들은 1,300만 평의 땅을 은행감독원의 승인 하에 사들였다. 이는 분당, 일산 지역의 신도시 건설계획 면적보다 300만 평이나 넓은 것이었다. 자본의 반발로 애초 안은 계속 후퇴하면서 택지소유상한제, 개발이익환수제, 토지초과이득세로 구성된 법안이 만들어졌다. 그나마 택지소유상한제는 19989월에 폐지되고 20027월 위헌 판결을 받았으며, 개발이익환수제는 기업경쟁력 강화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20021월 폐지되었고, 토지초과이득세는 1994년 헌법불일치 판정을 받고 199812월 부동산시장 활성화 대책의 일환으로 폐지되었다. 이후 2005년 행정자치부가 인구 1%가 전국의 사유지 52%를 소유하고 있다.’는 자료를 공개하면서 토지공개념 부활에 관심이 쏠렸고 2006년 초과이익환수제가 도입되었으나 그나마 부동산시장 위축을 우려해 2013년부터 2017년 말까지 한시적으로 제도 시행이 유예된 상태다.

 

전국회의, 토지와 주택문제에 관한 노동자의 요구 정식화

자본주의 사회는 토지가 사유화, 상품화 되어 있기 때문에 토지의 균등한 배분이나 사회화가 가능하지 않다. 그럼에도 땅 한 평 없는 노동자에게 토지 문제가 중요한 이유는 땅값이 집값, 전월세값과 연결되어 생활을 위협하고 부의 양극화를 심화시키기 때문이다. 그런데 1989년 당시 토지공개념을 둘러싼 정치권과 언론의 논란이 확대되는 와중에 노동자의 실생활과 직접 연관된 주택 문제는 슬그머니 실종되고 있었다. 변변한 방 한 칸 없는 노동자에게 토지 문제는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때문에 전국회의는 토지 문제와 주택 문제, 그리고 물가와 임금 문제를 결합시켜 토지 문제를 바라볼 수 있도록 선전과 공청회 등을 배치하고 노동자의 요구를 제출했다. 전국회의의 요구는 토지공개념 입법안 확대 실시 부동산투기 주범 30대 재벌을 비롯, 대토지 소유자의 토지를 국가가 수용·매입, 국유화하고 토지구입에 필요한 재원은 국가재정에서 조달을 원칙으로 하되, 독점재벌 소유의 토지구입비는 독점재벌의 은행부채로 대체하도록 할 것 국공유지에 공공영구임대주택(9~25평형)을 대량으로 건설할 것 군사보호구역을 비롯한 국공유지를 즉시 개방할 것 임대차보호법을 개정할 것 등이었다. 하지만 토지공개념 논의 실종과 함께 노동자들의 관심도 사라졌다.

프레시안이 국토교통부 발표를 기초로 보도한 바에 따르면(2017.11.9.) 2012년 현재 개인 토지는 상위 1%가 전체의 55.2%, 상위 10%가 전체의 97.6%를 소유하고 있고, 법인 토지의 경우 상위 1% 법인이 전체의 77.0%, 상위 10%는 전체의 93.8%를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극소수의 대기업, 상위 자산가가 토지로 아무런 가치 창출 없이 이윤을 챙기고 있는 것이다. 현재 한국의 재산과세 중 보유세 비중은 25.7%로 미국(93.4%), 일본(75.9%), 영국(75.7%), 프랑스(64.3%)에 비해 크게 낮다. 토지에 관한 논의를 다시 제기해야 하는 이유다.

 

[참고자료]

전노협백서발간위원회-노동운동역사자료실, <전노협백서 제2>,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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