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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정 대타협은

노동개악의 포장지일 뿐이다

 

이주용정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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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24일 청와대가 주최한 노동계 초청 간담회에 민주노총이 불참하자 온갖 비난이 쇄도했다. 문재인 열성지지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민주노총 내부에서도 질타의 목소리가 나왔다. 보건의료노조는 24일 당일 논평을 내 유감을 표명하며 이 간담회에서 노사정 사회적 대화 필요성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자했다고 밝혔다. 공공운수노조 역시 민주노총이 간담회에 참석해야 했다는 입장을 발표하며 정부와의 지속적인 대화추진을 요구했다.

이들 노조의 입장서에서 드러나듯 이 간담회는 그저 밥 한 끼 먹는 이벤트가 아니라 문재인정부의 노사정 대타협 공개선포식이었다. 실제로 간담회에서 한국노총은 노사정위원회 복귀의사를 밝혔고 문재인은 노사정 대화 복원을 희망한다고 화답했다. 노사정위원회 위원장 문성현은 언론을 통해 이 자리가 노사정위원회 재가동의 사전작업이었음을 숨기지 않으며 대통령이 간담회에서 언급한 노사정 대표자회의 개최를 예고했다.

1998년 김대중 정부의 1기 노사정위원회가 가장 먼저 합의한 것은 정리해고제와 파견제였다. 이 때문에 민주노총은 조합원들의 거센 반발에 직면해 1999년 노사정위원회를 탈퇴했다. 이후 20년간 노사정 대타협은 각 정권의 신자유주의 노동개악에 사회적 합의라는 외피를 제공했다. 문재인정부에 기대를 품은 사람들은 새 정부는 다르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환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문재인정부는 자신의 노동개악을 이미 구상하고 있다.

 

문재인정부의 노사정 대타협, 속내는 무엇인가?

청와대 간담회 이후 1030일 문재인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경제 패러다임 전환을 위해 노사정 사회적 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앞서 725일 정부는 문재인이 언급한 경제 패러다임의 전환이라는 제목을 붙인 <새정부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한 바 있다. 여기에서 문재인정부의 노사정 사회적 대화 목적이 무엇인지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이 문서에서 사회적 대타협은 두 번 등장한다. 첫째, 노동존중사회 실현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 사회적 대타협을 추진한다는 대목이다. 이 부분에서는 노동기본권 보호와 ILO 핵심협약 비준, 임금체불·부당해고·직장내 괴롭힘으로부터의 권리구제 강화 등을 열거하고 있다. 그런데 노동기본권은 협상의 대상이 아니라 정부가 마땅히 보장해야 하는 사안이다. 기본권 침해나 임금체불, 부당해고는 현행법상으로도 엄연한 노동법 위반으로 처벌해야 하는 문제이지 거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뒷부분에서는 갑자기 광주형 일자리 모델 확산이 등장하는데, 결국 이것이 실제 목적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 정부는 당연히 지켜야 할 노동기본권을 선심 쓰듯 보장하겠다면서 대신 정규직보다 체계적으로 낮은 임금을 받는 중규직 양산 프로젝트인 광주형 일자리를 수용하라는 것이다.

사회적 대타협을 거론한 두 번째 대목은 더 심각한데, “한국형 고용안정·유연 모델 구축을 위해 사회적 대타협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정부가 제시하는 유연안정성 모델은 해고를 쉽게 하는 대신 실업안전망을 구축한다는 것으로 스웨덴이나 네덜란드 모델에 기반을 둔다. 그러나 유연안정성 모델은 유럽에서도 1970년대 경제위기를 거치며 임금삭감과 상시 구조조정, 시간제 일자리 양산의 핵심 기제였다(유럽식 사회적 합의주의 모델 비판에 대해서는 <변혁정치> 47호 기사 노동자를 위한 유럽은 없다참고). 사회복지기반이 미미한 한국에서, 더욱이 사회서비스 시장화를 통해 정부책임을 줄이려는 문재인정부에서 유연안정성은 그 자체로 노동유연화일 뿐이다.

 

돌아온 박근혜 노동개악

결국 문재인정부가 밝힌 경제 패러다임 전환을 위한 노사정 사회적 대화의 방향은 임금 하향평준화와 노동유연화다. 이를 압축한 표현이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이다. 그런데 박근혜정부 노동개악의 슬로건 역시 노동시장 양극화 해소였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등 노동자 내부의 격차를 줄인다면서 비정규직 철폐·정규직 전환이 아닌 임금·노동조건의 하향평준화를 노정하는 점에서 문재인정부와 박근혜정부의 방향은 다르지 않다. 일방적으로 강행하느냐 사회적 합의의 외피를 쓰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박근혜정부 때에도 민주당은 노동개악의 절차를 문제 삼았지 내용에 대해서는 별 이의가 없었다. 당시 민주당 원내대표 우상호는 성과연봉제에 원칙적으로 동의한다고 밝혔다. 사회적 합의는 정부정책의 포장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드러낸 것이다.

문재인정부가 박근혜 노동개악의 상징인 양대지침과 성과연봉제 지침을 폐기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문재인의 선의 덕분이 아니라 2015년 민중총궐기, 2016년 공공부문 총파업과 연이은 촛불항쟁의 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이제 문재인정부는 사회적 합의의 형식을 빌려 박근혜 노동개악지침의 대체재를 마련하고자 한다.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난 것이 직무급제로의 임금체계 개편이다. 직무급제는 직종·직급·직무를 분류하고 평가해 임금체계를 세분함으로써 차별해소는커녕 정규직/비정규직 구분 이상으로 차별을 증폭하고 세분화한다. 1018일 정부가 발표한 <일자리정책 5년 로드맵>공정임금 체계 확립이라는 이름으로 직무급제 추진을 명시했다. 경제부총리 김동연은 취임 후 성과연봉제가 궁극적으로 맞는 방향이라며 임금체계 개편을 시사했는데 직무급제는 그 결과물인 것이다. 더욱 분노를 자아내는 것은 정부가 직무급제를 정규직화의 대가로 받아들이라고 요구한다는 점이다. 비정규직 절반을 전환대상에서 제외하고 전환방법에서도 간접고용이나 다름없는 자회사 전환, 평생 비정규직인 무기계약직 전환을 종용하는 등 스스로 정규직화 대책을 누더기로 만들었는데도 말이다.

 

정부의 노동운동 포섭

문재인정부는 사회적 대타협을 앞세워 적극적으로 노동계를 조직하며 노동운동을 잠식해 들어오고 있다. 예컨대 정부는 노동회의소를 설립해 미조직·비정규노동자들을 직접 조직하고자 한다. 노조 가입률이 10%에 불과한 이 나라에서 정부는 실질적으로 노동3권을 보장하는 게 아니라 관변노동단체를 설립해 나머지 90%의 노동자들을 조직하고 이 조직을 노사정 대타협의 일원으로 참가시켜 조직노동운동을 포위·고립시키려는 전략을 구사한다.

노동운동 내부에서도 정부에 노골적으로 협조하는 흐름이 강화하고 있다. 현 노사정위원장 문성현이 초대 상임대표를 맡고 지난 19대 대선에서 문재인을 공개지지한 사회연대노동포럼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지난 1031일 토론회를 열어 노사정위원회 참가뿐 아니라 각종 정부위원회에 참여할 것을 주장했다. 이번 민주노총 2기 직선제 위원장 선거에 출마한 윤해모 후보 역시 이 단체의 공동운영위원장을 맡았다.

문성현은 이번 국정감사에서 노사정위원회에 대해 지난 20년간 사회적 대화와 타협을 통해 경제위기 극복과 근로자 삶의 질 향상, 선진 노사 관계 구축에 기여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 실체는 정리해고·비정규직 양산·교섭창구단일화와 노조파괴·노동개악지침 등 노동자를 제물로 바친 것뿐이다. 민주노조운동은 이를 노사정 야합이라고 규정하며 비판해왔다. 이제 와서 야합을 화합으로 바꿔 부른다고 진실이 변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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