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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노동자의

노동3권 보장이 먼저다

 

임용현기관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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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민주노총]

 


1030일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체 노동자의 90%에 달하는 미조직 노동자들을 어떻게 사회적 대화에 참여시킬 것인지 그 방안을 강구해 달라"고 지시했다. 아울러 경제 패러다임 전환을 위해서는 정부의 정책적 노력에 더해 노사정이 모두 참여하는 사회적 대화가 꼭 필요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주지하다시피, 문재인정부는 일자리와 양극화 문제의 해법으로 재계와 노동계(시민사회), 정치권이 참여하는 사회적 대타협을 출범 초반부터 내걸었다. 임금과 고용, 노동시간 등 계급갈등이 첨예한 노동현안의 정책 추진 과정에서 사회적 대화틀을 적극 활용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표명한 것이다. 이같은 사회적 대화를 원활히 수렴할 수 있는 구조로 정부가 구상하는 방안이 바로 한국형 노동회의소 모델이다. 현 정부는 이미 19대 대선 당시부터 ‘90%의 중소 영세 미조직 노동자들의 권리 보장방안으로 노동회의소 도입을 밑그림으로 제시한 바 있다. 정부의 노동회의소 구상의 배경과 그것이 갖고 있는 문제점은 무엇일까?

 

노조 가입률 10%’ 대책?

노동회의소 공약은 한국노총 위원장 출신인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앞장서 제안했고, 한국노총 역시 제도 도입에 상당히 우호적인 입장이다.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도 지난 8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사회적 대화기구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으며, 미조직 노동자들을 대변할 노동회의소 설립을 국회의원들과 협의해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노동회의소에 관한 정부의 구체적인 추진계획이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현재까지 당··청에서 밝힌 노동회의소의 얼개는 이용득 의원의 초기 제안과 대체로 일맥상통한다. 이용득 의원이 제안한 노동회의소는 사용자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법정 민간단체(반민반관)인 대한상공회의소에 상응하는 개념이다. 노조 가입률이 10% 남짓한 현실에서 나머지 1,800만 명에 달하는 미조직 노동자들이 의무 가입하는 초기업 단위의 법정 민간단체를 설립하겠다는 것이다. , 기존 대기업정규직 중심의 노조 외연에 무수히 존재하고 있는 비정규직, 특수고용, 실업자 등을 포괄하는 상설적 기구를 만들어 취약 노동계층에 대한 권리를 보장하겠다는 것이 정부 계획의 핵심이다. 노동회의소의 주된 역할로는 정부 입법안과 지자체 조례, 각종 정책사업 분석 및 노동계 입장 표명, 법률상담, 근로조건 및 근로자와 그 가족의 경제·사회적 지위 향상에 관한 조치, 취업 및 전직 지원 등 고용서비스, 직업훈련 및 재교육* 등이다. 이는 고용노동부의 고용복지센터와 기능적 측면에서 중첩적일 수밖에 없다.

 

사회적 대타협의 파트너 구축 일환

그렇다면, 노동3권을 실현할 자주적 결사체로서 노동조합이라는 단체를 헌법과 법률이 이미 규정하고 있음에도, 정부 주도로 노동회의소를 설치하겠다는 공약이 제출된 배경은 어디에 있는가. 우선, 정부는 일자리와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내 노동계급이 기업 규모, 고용 형태, 성별에 따른 불평등을 심각하게 겪고 있는 현실(이는 흔히 노동시장 이중구조로 표현된다.)에 착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조 가입률이 10.2%(1939,000, 고용노동부 통계, 2015년 기준)에 불과한 사정, 더욱이 대기업·정규직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양대노총의 존재만으로는 미조직 노동자들의 권익 향상을 도모하기 어렵다고 본 것이다. 이에 따라, 비정규직·여성·청년 등 노동기본권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대다수 미조직 노동자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별도의 단체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게 정부 입장이다. 다시 말해, 노동회의소를 통해 미조직 노동자들에 대한 고용복지 서비스를 지원할 뿐만 아니라, 노조를 대신해 미조직 노동자들의 이익을 대변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사회적 대타협을 위한 하위 파트너로서 노동회의소를 활용하고자 하는 정부 복안이기도 하다.

미조직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법정단체로서 노동회의소 모델은 독일, 오스트리아, 룩셈부르크 등 서유럽 3개국이 한국보다 앞서 채택해 운영 중이다. 이들 나라의 노동회의소가 맡고 있는 공통적 역할에는 노동법사회법적인 법률 자문, 교육 및 훈련, 소비자 보호, 법 제·개정 시 노동자 입장 대변 등이 있다. 노조가 교섭과 투쟁을 담당하고, 노동회의소는 주로 취약 노동계층 보호, 사회적 대화와 입법을 담당하는 형태라 할 수 있다.

한국형 노동회의소 모델은 이 중에서도 전후 복구와 산업평화에 매진하기 위해 일찍이 사회동반자Sozialpartnerschaft 시스템을 갖춘 오스트리아 노동회의소의 목적과 기능에 착안해 기초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718외국의 사례로 본 한국형 노동회의소의 필요성과 도입방향국제 심포지엄에서 이용득 의원은 기업별노조체제의 한계와 노사관계에서 정부 영향력이  우리나라에서는 오스트리아 모델을 적용하기 쉽다 “노동회의소를 통해 90% 미조직 노동자를 보호하고 노사를 대변하는 사회적 대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인사말을 통해 밝힌 바 있다. 양대노총의 계급대표성이 취약한 현실적 조건에서 정부정책에 좀 더 다양한 노동자들의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최적의 형태가 바로 노동회의소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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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회의소는 누구의 이익을 대변하는가?

노동회의소 도입을 옹호하는 정부와 한국노총은 노동조합과 노동회의소가 상호보완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낙관하지만, 이는 억측에 지나지 않는다. 우선, 지금 이 순간에도 모든 노동자들의 노조 할 권리가 온전히 보장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노조의 탄압 도구로 악용되는 복수노조창구단일화 제도, 쟁의권을 무력화하는 거액의 손해배상청구, 그리고 노조파괴와 부당노동행위 등이 여전히 현장을 옥죄고 있다. 이처럼 최소한의 노동기본권조차 현실에서 무력화되고 있지만 이를 시정하거나 엄단하기 위한 범정부 차원의 노력은 실종되다시피 한 상황이다. 10% 수준에 그치고 있는 노조 가입률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이를 가로막고 있는 법제도부터 고쳐야 한다. 민주노총이 노조 가입률 30%, 단체협약 적용률 50%를 실현하기 위해 산별교섭 법제화와 노동3권 전면보장을 위한 노동법 전면개정을 요구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노동회의소의 고용복지 서비스 지원 역할은 애초에 정부 기관이 수행해야 할 국가책임의 영역이다. 게다가, 노동행정 서비스에 국한된 이같은 미조직노동자 지원체계는 임금 격차나 고용불안, 인권침해에 이르기까지 개별사업장 내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현안에 대해 아래로부터의 단결과 연대를 요원하게 만들 것이다.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이 거세된 정부 주도의 법정 민간단체가 대변할 수 있는 이익이란 오로지 정부나 지자체가 허용 가능한 수준에서 사회적 대화로만 규율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심각한 문제는, 노동회의소가 향후 문재인정부의 노동정책 추진과정에서 사회적 여론을 대표하는 기구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이는 정부와 한국노총의 예상과는 반대로 기존의 노조와 노동회의소가 상호보완이 아닌 상호경쟁으로 치달을 가능성을 암시한다. 자주성과 민주성, 투쟁성이 생명인 민주노조를 갉아먹고, 약화된 노조의 기능을 관변단체인 노동회의소로 대체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야심찬 노동 재편 프로젝트임을 명심해야 한다.

 

* 민주노총 정책연구원. 2017. 연구노트 2017-01독일 노동회의소가 한국에 주는 시사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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