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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조합 전국조직 건설을 향하여(2)

 

정경원노동자역사 한내


1989년 10월 8일 전노협 건설을 위한 전국 노동자 등반대회(북한산). [사진 : △ 노동자역사 한내,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전국노동자신문 발간사업과 선봉대 조직

지역업종별노동조합전국회의는 노동자의 전국조직 건설을 위해 전국노동자신문 창간, 선봉대 조직, 교육·문화 사업, 노동자 결의를 모으는 등반대회를 준비했다.

이 중 전국노동자신문창간사업 계획은 제1차 전국회의에서 수립되었는데 투쟁 과정에서 관제언론에 대항한 지노협신문 등 노동자 매체와 소식지·유인물의 성과를 전국신문으로 모아내자는 데서 시작되었다. 신문은 전노협 기관지로써 전체 노동자의 대의와 실천적 입장을 정확히 표명하고 결속을 다질 무기, 당면투쟁을 지도할 필요성에서 제기된 것이었다. 연말 8면 신문 발행을 목표로 8월부터 지역의 선전책임자 회의가 열렸고 10월에는 지역에 한 명씩 통신원을 두고 배포체계를 구성했다. 전국노동자신문은 고속버스로 전국으로 배달되었고 지노협 간부가 터미널에 나가 이를 받아 단위사업장으로, 다시 단위사업장 간부와 대의원들이 조합원들에게 배포하는 면대면 방식으로 배포되었다. 신문 배포 자체가 전노협의 조직력이었다.

9차 전국회의에서는 노동법개정투쟁과 전노협 건설이라는 중심 과제를 담당할 선봉대 조직화를 하반기 주요사업으로 설정하였다. 선봉대는 9월부터 매월 회의를 하면서 선봉대 임무와 위상을 확정하고 전국노동자대회 상경 및 사수 전술을 짰다. 1112일 밤새 관악산을 넘어온 노동자들은 전국노동자대회를 사수했고 그곳에서 전노협 건설을 위한 전국선봉대 발대식을 치렀다. 이후 선봉대는 지속적 조직력 확보를 위한 방안과 훈련계획을 마련하고 전노협 건설투쟁에서의 선봉대 역할, 투쟁, 홍보, 선전, 기금사업 등 제반 임무에 대한 실천계획을 세웠다.

이 외에도 전노협 건설을 위한 전노협 건설 소책자 제작, 만화대자보, 홍보비디오 제작 등 선전사업이 이어졌고 노래판굿 꽃다지전국 순회공연도 12월에 열렸다. 교육사업도 활발해 전노협 건설을 위한 대중강연 지역 순회, 각 지역과 업종협 의장단을 대상으로 한 지도자훈련 프로그램도 있었다. (당시 대중강연을 중집위원인 단병호·김승호·이성도가 맡았다. 전국회의에는 노동운동단체도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전국노운협 대표가 중집위원이었다. 그리고 초청연사 명단에는 백기완·노무현·배일도·김문수가 나란히 적혀있었다. 28년 전 일이다.)

전국회의는 조직의 운동방향에 통일성을 기하고 사업을 알리기 위해 기관지를 창립했고 이를 발로 뛰며 알리고 노동자를 조직할 선봉대를 구성했으며 지역의 지도력 형성을 위한 교육체계를 만들었다. 노동자에게 전국조직 건설의 필요성을 알리기 위해 판굿 꽃다지와 대중강연을 배치했다. 그리고 함께 전노협 건설을 외치기 위한 등반대회를 준비했다.

 

노동악법 철폐와 전노협 건설을 위한 전국노동자 등반대회

1989108일 전국 노동자 등반대회는 북한산, 금정산, 무등산에서 열었다. 등반대회는 자본가의 착취에 죽음으로 항거한 경동산업의 분신사건, 마산과 울산지역에서 발생한 극우테러사건, 전교조에 대한 탄압 등 노동운동 탄압을 무력화시키고 노동법 개정투쟁과 전노협건설을 결의하기 위해 계획된 것이었다.

전국회의는 등반대회라는 형식을 택한 이유를 그간 전국회의 및 지노협의 사업에 소극적인 일반 조합원이나 중간노조들을 포괄해내는 데 효과적이기 때문이라 했다. “등반대회를 계기로 민주노조진영의 조직을 확대, 강화하고 노동자들이 등반대회의 기치인 분쇄 노동악법, 건설 전노협을 외치며 사업장과 지역, 업종의 울타리를 뛰어넘어 결합하도록 하겠다는 게 목적이었다. “특히 민주노조운동의 두 축인 업종협과 지노협의 결속을 강화하는 데 중요한 의미를 두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준비과정부터 함께하자는 방침까지 정했다. 전노협 결성을 앞두고 두 축의 노동자가 하나로 모이지 않고 있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당시엔 등반대회가 대중사업으로 자주 등장했다. 지역 조직의 연대사업, 노조 단합대회, 한겨울 쟁의훈련, 노조 결성식 등이 산에서 열렸다. 등반이 누구나 함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란 점, 산은 노동자가 모이는 데 방해를 받지 않는 곳이라는 점, 무엇보다 땀 흘리며 함께 오르며 연대의식을 느낄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을 것이다. 노동자의 전국조직은 이렇게 대중사업을 통해 결의를 모으고 그 힘으로 출발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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