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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중심주의와 2차 가해 개념은 여전히 유효하다

- 노동자연대는 피해생존자와의 연대, 공동체적 해결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고 있다

 

재현사회운동위원회


 

우리는 <변혁정치> 지난호 기사를 통해 노동자연대는 피해자 비난을 멈추고 진심으로 사과해야 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이후 노동자연대는 “‘변혁당 안에서 영화도가니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누군가 공개 규탄한다면 당이 닥치고 사과나 해야 하는 걸까요?”라는 제하의 반박기사를 냈다. 노동자연대의 반박 입장은 지금까지 줄곧 발표해왔던 내용과 다르지 않았다. 여전히 사실을 왜곡하면서, 피해자도 아닌 이상한 사람 때문에 조직이 억울한 상황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서 만약 변혁당이 연루된 문제라면 과연 닥치고 사과하겠느냐며 반문하고 있다.
노동자연대의 반박기사에 어떤 응답이 필요할지 숙고했고, 이 글을 통해 우리의 진의가 곡해되는 일이 다시는 없었으면 한다.

 

피해자 중심주의와 2차 가해 담론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운동사회 내 성폭력 뿌리뽑기 100인위원회(이하 ‘100인위’)가 커다란 파장을 몰고 온 지도 어느덧 17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당시만 하더라도 운동사회 내 성폭력 사건에 대한 시각이나, 성평등 감수성은 매우 부족했다. 이로 인해 공동체 내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때, 가해지목인에 대한 동지적 관계 훼손, 나아가 조직의 명예 실추 등이 피해호소인의 아픔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일이 만연했다. 당시 100인위 사건은 그간 운동사회 내에서 은폐되었던 성폭력을 폭로하면서 가해자의 실명을 공개했는데, 이러한 방식은 운동사회 내 성폭력 문제를 공론화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후 반성폭력 운동진영은 성폭력 가해자를 공개하고 폭로하는 방식을 넘어서, 운동사회와 성폭력 사건의 당사자 조직이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고, 가해자를 징계함으로써 성폭력 사건을 올바르게 해결하고자 했다. 이 과정에서, 성폭력 사건을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의 관점에 입각해 바라보고 해결하기 위한 노력의 산물로 등장한 피해자 중심주의와 2차 가해 개념은 이후 성폭력 사건 해결의 중요한 원칙으로 작동했다.

그러나 피해자 중심주의와 2차 가해 담론은 성폭력 사건의 공동체적 해결을 위한 계기로 나아가지 못하고, 공동체 구성원들이 2차 가해자로 지목당하지 않기 위해 사건 자체를 함구하거나 외면했던 한계를 경험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운동사회는 피해자 중심주의와 2차 가해라는 개념의 적용과 실천이 피해자를 절대 권력화하거나, 2차 가해를 이유로 구성원들이 침묵하지 않기 위한 노력을 여전히 진행 중이다. 또한, 가해자를 처벌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성평등 감수성을 기를 수 있도록 토론하고 교육하는 데 보다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렇듯 운동사회는 피해자 중심주의와 2차 가해 담론을 기계적으로 해석하거나 적용하지 않기 위해 진정한 공동체적 해결의 방향은 무엇인지 끊임없이 질문하며 답을 찾고 있다. 사건 해결과정에서 사용했던 개념 역시 고민의 진전과 함께 변화하고 있고, 그런 면에서 피해자 중심주의, 2차 가해 개념도 다르지 않다. 현재 운동사회 내에서 피해자 중심주의피해자 관점으로 ‘2차 가해‘2차 피해라는 용어로 대체해서 사용하거나,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고 제기되는 까닭도 이같은 고민의 발로라고 볼 수 있다.

 

노동자연대의 주장이 과연 타당한가

물론, 이러한 문제의식과 고민이 피해자중심주의와 2차 가해 담론의 전면적인 철회나 폐기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노동자연대가 피해자 중심주의를 피해자의 주관적인 판단과 결정으로 폄하하면서, 성폭력 사건 해결을 증거주의로 전환하고, 2차 가해 개념 자체를 폐기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이는 곧 객관성과 합리성을 앞세워 증명되지 않은피해를 비가시화하고 가해자의 무죄를 입증하는 방편으로 적극 활용될 것이기 때문이다.

피해자 중심주의는 성폭력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에 있어서 권력 우위에 있는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의 입장을 존중하고 신뢰하고 경청하겠다는 태도다. 그런데 성폭력 사건 해결을 증거주의로 전환하자는 노동자연대의 주장은, 가부장적인 사회 인식과 그에 기반해 만들어진 법제도로 성폭력 사건을 판단하자는 것에 다름 아니다. 더구나 노동자연대는 반론 글을 통해 (피해자에게) 포르노를 보여주며 성적수치심을 느끼게 만든 원 사건을 성폭력 사건으로서 인지조차 못하고 있음을 거듭 드러냈다. 또한, 사법부 판결의 한계를 보지 않고 그것을 가해자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하기까지 했다. 대체 언제까지 자조직의 억울함을 해소하기 위해 피해자를 매도하고 이를 책으로까지 출간하는 등 폭력을 지속할 것인가.

지금까지 여러 운동단위에서 노동자연대의 성찰과 변화를 촉구하는 입장문을 발표했지만, 애석하게도 노동자연대는 자신의 과오를 인정할 의사가 없는 듯하다. 그렇다면 이제 운동사회가 해야 할 일은 성폭력 사건을 대하는 노동자연대의 이같은 태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또한 노동자연대는 지금 누구의 편에 서 있는지 정확히 규정하고 평가로 남기는 것이 아닐까 판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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