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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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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17.09.15 08:05

섬서구메뚜기

 

지난 여름 잠깐동안 내버려두었던 텃밭은 온통 풀로 덮였다. 바랭이, 강아지풀, 방동사니, 털별꽃아재비, 개비름, 쇠비름, 질경이... 좁은 텃밭에 가지가지 풀들이 많이도 자랐다. 김장배추와 무를 심으려고 풀을 거두어낸다. 온갖 벌레들이 날고 기고 튀어서 달아난다. 여러종류의 거미와 개미, 먼지벌레, 무당벌레, 아주 작은 잎벌레종류, 꽃등에, 호박벌, 배추흰나비, 남방부전나비, 톱다리개미허리노린재, 우리가시허리노린재, 극동귀뚜라미, 땅강아지, 검은다리실베짱이, 사마귀, 벼메뚜기, 방아개비 그리고 섬서구메뚜기.

배추와 무, 두작물을 심으려고 땅을 갈면서 참 많은 풀을 베어내고 벌레들을 쫓아낸다. 농업의 본질은 파괴라고 외치는 농사꾼이자 환경운동가기도 한 리어키스의 말을 실감하게 된다. 그나마 작은 텃밭에서야 농약을 뿌리지 않으니까 쫓겨났던 풀과 벌레가 텃밭 주위에서 도시농부의 게으른 틈을 노리고 있다. 우리가 마트에서 사먹는 라면이나 두부의 원료가 되는 밀이나 콩 따위를 생산하는 대규모 농업은 차원이 다를 것이다. “농업은 그 땅에 살고 있는 모든 것을 박테리아까지 없애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런 다음 인간에게 필요한 아주 소수의 식물 종을 심는다. 수 킬로미터에 달하는 넓은 땅에 옥수수, , 밀 등의 곡물 중 딱 한가지만 심는 것이다. 동물이 죽어간다. 많은 경우 멸종지경까지 이른다. 농업으로 생산되는 음식은 한입 한입 죽음으로 가득 차있다.”[<채식의 배신>,리어키스,부키]

오늘 저녁은 뭘 먹어야하나? 매일매일 매 끼니마다 맞닥뜨리는 고민거리다. 그런 생각 때문이었을까 들깻잎에 붙어있는 섬서구메뚜기가 새삼스러워 보인다. 텃밭에서 볼 수 있는 벼메뚜기나 방아개비는 벼나 바랭이 같은 벼과 식물을 주로 먹지만 섬서구메뚜기는 정말 다양한 식물을 먹는다. “봉선화, 물오리나무, 우엉, 과꽃, 국화, 상추, 고구마, 배추, , 참외, 호박, 고추, 토마토, 감자, 당근, 들깨, 보리, 밭벼, , 옥수수, 메밀, 딸기, 쥐똥나무, 산딸기, 귤나무”. 도감에 나오는 섬서구메꾸기 먹이 식물 목록이다. 여기에 들어있지 않은 풀까지 포함시키면 섬서구메뚜기는 둘레에서 나는 거의 모든 식물을 먹는다. 게다가 잎뿐 아니라 꽃, 열매까지도 먹는다. 그러니 알을 까고 나오는 여름부터 알을 낳고 죽는 가을까지 논밭, 길가, , 공원 등 식물이 자라는 곳이면 어디에서나 섬서구메뚜기를 볼 수 있다.

어째서 섬서구메뚜기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을까. 벼베기를 마친 논에 삼각형으로 볏짚을 쌓아놓은 낟가리를 섬서구라 하는데 섬서구메뚜기의 삐죽한 머리가 이 섬서구를 닮아서 그리 불리게 되었단다.[<메뚜기 생태도감>,김태우,지오북] 그런데 국어사전엔 섬서구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어느 지방의 사투리인것도 같은데 확인할 수가 없다. 섬서구메뚜기처럼 방아개비도 머리가 삐죽해서 두 종을 자주 혼동한다. 방아개비는 섬서구메뚜기보다 훨씬 크고 날씬하다. 특히 뒷다리가 크고 길다.

들깻잎에 붙어있는 섬서구메뚜기는 작은 새끼메뚜기를 등에 업고 있다. 하지만 등에 업혀있는 작은 메뚜기는 새끼메뚜기가 아니라 수컷 섬서구메뚜기이다. 짝짓기를 하려고 몸집이 작은 수컷이 배나 더 큰 암컷 등에 올라탄 것이다. 메뚜기들은 대개 수컷이 암컷보다 작다. 그 가운데서 섬서구메뚜기는 유별나게 수컷이 작다. 암컷 둘레엔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는 다른 수컷들이 있다. 암컷을 다른 수컷들로부터 지켜내려고 짝짓기가 끝나도 수컷은 등에서 내려오지 않고 계속 업혀 다닌다. 그래서 짝짓기하는 이맘때엔 암컷 등에 대개 수컷이 업혀있다.

예전엔 메뚜기를 잡아 구워먹었다. 아이들의 군것질거리였고, 어른들 술안주거리였다. 메뚜기는 단백질이 소고기보다 많다. 리어키스는 말한다. 병든 세상과 나를 구하기 위해서 먼저 지금 사는 곳을 돌아보라고. 우리가 사는 곳에 무엇이 자라고 있는지를 보라고 한다. 우리가 사는 곳에서 걸어서 하루 안에 닿을 수 있는 거리 안의 강, , , 비에 대해서 배우고 우리 음식을 그 안에서 해결해야 한다고 한다. 섬서구메뚜기를 보면서 오늘 저녁 무엇을 먹을지 고민이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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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강우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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