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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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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쟁으로 만든

1988년 전국노동자대회

 

정경원노동자역사 한내

 


전국노동자대회를 만든 사람들

오른손을 높이 치켜들며 구호를 외치는 노동자를 형상화한 걸개, 발 디딜 틈 없는 연세대학교 노천극장, 온몸으로 구호를 외치며 행진하는 노동자, 그 앞에 펼쳐진 현수막 노동법 개정은 노동자의 힘으로’, 그리고 피로 쓴 노동해방

19881113일 전국노동자대회를 떠올리면 그려지는 형상들이다.

걸개의 모델은 서울지하철노조 조합원이었고 노동해방 혈서를 쓴 이들은 선봉대원들과 인천 세창물산 등 투쟁사업장 노동자 100여 명이었다. 풍물을 연주한 100여 명의 노동자는 현장 조합원들이었다. 문화단체 활동가들이 대거 참여해 대회를 풍성하게 만들었는데 이들은 돈 한 푼 받지 않고 함께했다. 대학 총학생회의 협조로 학교에서 대회를 치를 수 있었다. 지역에서는 전국노동자대회 참여를 위한 모금을 대대적으로 벌이기도 했다. 사정이 있어 참여하지 못하는 노동자는 비용에 보태라고 돈을 쥐어주고 대신 생생한 경험담을 약속받았다.

참여자들은 경찰이 봉쇄할 것을 우려해 전날부터 연세대로 모였다. 깃발을 앞세워 지역의 노동자들이 등장할 때면 주변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노동자들은 웅변대회, 투쟁 보고대회를 하면서 추운 밤을 열기로 녹였다.

 

노동자들의 요구와 목표가 집약된 전국노동자대회

1113일 대회장에서 노동자들이 외친 구호는 계승하자 열사정신! 철폐하자 노동악법!”, “노동운동 탄압하는 군부독재 타도하자!”, “열사정신 계승하여 노동해방 쟁취하자!”였고 전태일 추모가’, ‘파업가’, ‘동지가를 불렀다. 행진할 때 발걸음에 맞춘 구호는 노동법을 개정하자!”, “전두환 이순자를 구속하자!”, “군부독재 타도하자!”, “전경련을 해체하라!”였다. 건설 전노협도 외쳐졌는데, 이는 대회 공식 구호는 아니었지만 누군가 전노협을 건설하자!”고 선창하면서 자연스럽게 함께 외치게 되었다.

이날의 구호들은 당시 노동운동의 전략과 전술을 집약하고 있다. 노동자들은 당면 과제로 노동법 개정을 설정했고 투쟁 대상을 해체 전경련’, ‘군부독재 타도로 잡았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조직적 과제로 건설 전노협을 제기했고 노동해방이라는 노동운동의 이념을 정식화했다. 노동해방은 다음에 따로 검토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요구, 투쟁 대상, 조직적 과제가 왜 제기되었는지 살펴보자.

노동법 개정 요구는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신규노조 결성 과정에서 단결을 가로막는 악법인 복수노조 설립 금지와 까다로운 설립 절차, 단위사업장을 넘는 연대를 가로막은 제3자 개입 금지 조항을 그대로 두고서는 민주노조운동의 확산이 불가능하다는 인식으로부터 나왔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1년 넘게 전개해온 노동법개정투쟁을 하나로 모은 투쟁이었다.

투쟁의 대상을 자본과 정권으로 잡은 것은 임금이나 노동조건 개선이 기업주와의 협상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것을 경험으로 알았기 때문이다. 1988년 하반기는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놀라운 성장을 보인 노동에 더는 밀려서는 안 된다고 판단한 자본과 정권이 대대적인 반격을 준비하기 시작한 때였다. 그들은 노동자대투쟁으로 변화한 계급관계를 되돌리려 했다. 때문에 노동자가 임금이나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싸워도 그것이 연대투쟁으로 확산되고 그 결실이 지역조직, 전국조직 건설로 이어진다면 그것은 총자본과 총노동의 대결이었던 것이다.

조직 건설 과제를 설정한 것은 민주노조의 요구를 의식적으로반영한 것이었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만들어진 민주노조들은 일부에서 주장하는 한국노총 민주화론을 무력화시키고 지역조직을 건설했고 이어 전국조직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을 모아가고 있었다. 전국노동자대회에 이를 대중적으로 확인하고 그 힘을 바탕으로 전국조직을 건설하겠다는 의식적 노력이 담긴 구호가 등장한 것이다. 그 결과 1988년 전국노동자대회의 결과물은 지역업종별 노동조합 전국회의로 모아졌다. 여의도까지 행진한 후 마창노련 간부를 중심으로 민주당사 점거에 들어갔고, 여기에 전국의 지도자들이 참여했다. 이들은 농성장에서 전노협 건설을 전제로 한 전국회의를 구성하기로 하고 12월 전주에서 첫 회의를 열었다. 투쟁의 결실을 조직으로 맺은 전국노동자대회의 전통은 이후로도 한동안 이어진다.

매해 11, 전국의 노동자가 버스를 대절해 서울로 집결하여 그해 투쟁 요구를 걸고 대회를 치른 후 돌아간다. ‘스스로대회에 참여해 노동자의 힘에 놀라고 그 감격을 전국의 노동자에게 전했던 이들의 모습을 찾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역동적이고 자연스러운 요구와 의식적 활동이 만나 노동운동이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던 전국노동자대회가 그저 연례행사처럼 치러지는 것은 참으로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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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에서 여의도 국회까지 행진하는 5만 노동자들. [사진 : 이용호, '한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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