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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탈핵 선언 이후

 

안재훈환경운동연합 탈핵팀장

 


지난 619일 부산 기장군 고리원자력발전소에서는 역사적인 기념식이 열렸다. 바로 국내 최초의 원전 고리1호기의 폐쇄를 기념하는 행사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의 탈핵선언을 두고 연일 보수언론과 원자력 관련 학자들은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를 쏟아내고 있다.

문 대통령이 탈핵에 대해 밝힌 입장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계획 중인 신규원전 백지화, 수명연장한 월성1호기 폐쇄와 원전 수명연장 금지, 건설 중인 신고리 5, 6호기의 사회적 합의 도출, 원자력안전위원회를 대통력직속위원회로 승격, 에너지 고소비 산업구조 효율화 및 산업용 전기요금 재편, 탈핵로드맵 마련 등의 내용이다.

문 대통령의 탈핵선언은 정부가 처음으로 원전 중심의 위험사회에서 벗어나 탈핵으로 방향전환을 밝혔다는 점에서 역사적인 순간임에 틀림없다. 이는 그동안 원전이 밀집해 있는 지역을 비롯해 전국 곳곳에서 시민들이 함께 벌여온 탈핵운동의 소중한 성과다.

이후 국무총리실은 건설 초기 단계인 신고리 5, 6호기에 대해, 공사를 중단하고 3개월 동안 공론화 과정을 거쳐 공사 지속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에너지 전문가들의 의견도 듣지 않고 결정한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이 거세다. 또 원전을 없애면 전기요금 폭탄과 산업계 피해, 전력대란이 당장이라도 크게 일어날 것처럼 불안감을 조성하는 뉴스가 쏟아지고 있다.

 

탈핵이 바로 민주주의

핵산업계의 입장을 대변하는 교수와 전문가들은 국민 의견수렴을 제대로 하라며, 심지어 탈핵을 두고 국민투표를 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하고 있다. 그들은 바로 그동안 대다수 국민들의 원전반대 목소리를 전혀 반영하지 않고, 원전확대의 달콤함을 누려온 전문가들이 아닌가. 이들이 반성을 해도 모자랄 마당에 이들이 민주주의를 이야기하는 게 황당할 따름이다.

신고리 5, 6호기 공론화의 본질은 전문가주의를 극복하고 에너지민주주의를 제대로 실현할 수 있느냐다. 그동안 국민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에너지 정책 결정과정에서 국민들은 물론 원전주변지역 지자체와 주민들의 의견 한 번 청취한 적이 없었다. 심지어 한 곳에 세계 최대 원전단지를 입지하면서도 의견수렴 과정도 전혀 없이 관료들이 소수의 원자력, 에너지 전문가들을 들러리로 세워 원전 확대 정책을 일방적으로 추진해왔다. ‘핵마피아라 불릴 정도로 강력한 카르텔을 형성한 원자력계는 원전관련 정부부처와 학계, 산업계 등을 장악하고 전력정책을 그들만의 손으로 밀실에서 결정해오면서 그 과실을 취해왔다.

주민의 동의도 없이 신규원전 부지선정을 추진하자 주민투표까지 스스로 만들어 냈던 삼척과 영덕의 주민들, 원전 때문에 765kV 초고압송전선과 10년 째 싸우고 있는 밀양 주민들, 원전주변에 살면서 갑상선암 발생으로 소송 중인 500명의 주민들, 매일 매일 삼중수소 피폭에 시달려 이주를 요구하며 1,000일 넘게 농성 중인 월성원전 나아리 주민들. 이들의 문제들에 지난 정부와 소위 원자력에너지 전문가들은 침묵했고 외면했고 무시했을 뿐이다. 이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길, 탈핵이야말로 민주주의 그 자체다.

 

탈핵으로 앞서 간 나라들을 보라

2011년 탈핵에너지전환을 선택한 독일의 사례를 보면 이러한 주장들이 과장되었다는 것을 이내 알 수 있다. 독일은 2011년 후쿠시마 사고 직후 8개의 원전의 가동을 중단시키고, 2022년까지 17개의 모든 원전을 폐쇄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에 비하면 문재인 대통령이 발표한 탈핵에너지 전환은 2~3배 정도 장기간에 걸쳐 진행하는 계획이다. 그럼에도 독일의 가정용 2015년 전기요금은 킬로와트시당 28센트로 5년 전(23.6센트)에 비해 18.6% 인상되었을 뿐이다. 또한 독일은 1990년대에 재생에너지가 전력 생산 비중에서 3% 정도였지만, 2016년에는 29%로 증가했다.

또 원자력발전의 전력생산 비용이 저렴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고 위험비용과 폐기물 처리 비용 등을 감안하면 현재보다 원가가 상승할 수밖에 없다. 후쿠시마 사고로 인한 수습복구 비용으로 일본에서는 현재까지 200조 원의 비용이 들어갔다고 한다. 사용후핵연료 역시 포화상태에 다다랐으나, 아직까지 이를 어찌 처분할지 방법조차 마련하지 못했다. 세계적으로도 이 문제를 해결한 나라가 아직 없기 때문에 그 비용은 미래세대까지 이어져 부담이 계속 떠넘겨질 수밖에 없다. 당장 이런 문제들만 생각해보더라도 원자력발전은 이미 앞서간 나라들이 그랬듯 한국에서도 오래지 않아 경제성이 떨어져 도태될 수밖에 없다.

대만은 201410조원의 비용이 들어간 공정율 98% 원전 2기의 건설을 중지했다. 그리고 2016년 원전제로와 재생에너지를 촉진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대만에 비하면 신고리 5 ,6호기는 아직 건설초기라 앞으로 들어갈 비용을 많이 아낄 수 있다. 이 돈으로 재생에너지 확대, 에너지효율화 등에 투자한다면 원전보다 훨씬 많은 일자리도 만들 수 있다.

 

우리가 직접 결정하는 탈핵

탈핵으로 나아가는 길이 공짜가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당장 신고리 5, 6호기의 경우 건설 백지화를 결정한다면 그로 인한 업체, 노동자들, 지역주민들의 피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를 원전 찬반 갈등의 본질로 호도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더구나 그간 원전운영으로 인한 주민들의 피해와 위험감수 등에 대해서는 어떠한 문제제기도 하지 않은 채, 건설 중단으로 발생할 손실만을 문제 삼는 것은 옳지 않다. 물론 정부는 이러한 피해를 최소화하고, 합리적인 보상과 대책 등을 책임 있게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이제 우리는 탈핵의 길로 접어들었지만, 갈 길이 아직 멀다. 당장 신고리 5, 6호기 건설 중단 문제가 3개월 동안의 공론화 과정으로 결정된다. 이 과정에서 기업과 소수 학자들의 이해가 아닌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토론과 참여를 통해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

신고리 5, 6호기 백지화 결정만으로 탈핵이 실현될 수는 없다. 완공단계의 원전들, 사용후핵연료 처분 등의 문제가 숙제로 남아 있다. 탈핵의 시기를 더 앞당기고, 우리 스스로가 주체가 되어 탈핵의 과정, 에너지전환의 과정에서 결정권자가 될 수 있도록 적극 동참해야 한다. 교육과 실천, 대안을 지역과 현장 곳곳에서 함께 만들어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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