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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핵, 국가 주도에서

중 주도로 바꾸자

 

임용현기관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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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를 계기로 세계 각국은 과연 핵발전을 이대로 지속해도 좋은 것인지 진지하게 되묻게 되었다. 사고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핵발전은 지구 온난화에 대한 대안적 에너지 정책으로 세계적인 각광을 받고 있던 차였다. 그러던 와중 일어난 후쿠시마 사고의 여파로 독일, 스위스, 벨기에, 대만 등 여러 국가들이 잇따라 탈핵을 결정하게 된 것이다. 독일은 원전 17기를 2022년까지 모두 폐쇄한다는 결정을 내렸고, 스위스도 2034년까지 모든 원전의 폐쇄를 선언했다. 핵발전 종주국이라고 할 수 있는 프랑스조차 80%의 핵발전 비중을 2025년까지 50%로 낮추기로 결정할 정도였다.

 

덴마크 민중들이 해냈다

그런데, 국내 핵발전 산업계와 학계는 이들 국가의 탈핵 결정에 대해 매우 이례적인 일일 따름이며 세계적인 추세도 아니라고 반박한다. 언뜻 보기에는 일리 있는 주장 같지만, 이는 핵발전 도입 자체를 거부한 상당수 국가들의 사례를 통계에서 완전히 배제한 데서 비롯한 왜곡이다. IAEA자료에 따르면 현재(20172월 기준) 가동 중인 핵발전소는 31개국, 449(미국 99, 프랑스 58, 일본 43, 중국 36, 러시아 35, 한국 25, 인도 22, 캐나다 19기 등)에 달하는데, 핵발전소 운용이 가능한 기술력을 갖춘 선진국 가운데 애초에 핵발전을 도입하지 않은 경우가 적지 않다. 그리스, 오스트리아, 룩셈부르크, 덴마크, 아일랜드 등은 아예 처음부터 핵발전을 통한 전력생산을 반대했던 대표적인 국가들이다.

이 중 덴마크의 사례는 눈여겨볼 만하다. 덴마크는 1973년 오일쇼크를 겪으면서 정부가 앞장서 핵발전소 착공 계획을 서둘렀다. 이윽고 정부에서 에너지수요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대안은 핵발전소 뿐이라는 내용을 담은 정책보고서(AE76, 1976)를 발표하자, 시민단체들도 대체에너지 정책을 현실화하는 방안을 담은 보고서를 내놓았다. 이들은 핵발전의 대안으로 신재생에너지, 에너지효율화, 그리고 천연가스나 풍력 등 에너지원을 다양화하자는 내용을 정부에 건의했다. 핵발전을 추진하려는 정부와 기업들, 이를 반대하는 시민사회 간에 갈등이 첨예해졌고, 그로부터 10년 동안 덴마크 사회는 핵발전 도입을 둘러싼 양측의 줄다리기가 팽팽하게 계속됐다. 1979년 미국 스리마일섬 핵사고가 발발한 이후에는 수도 코펜하겐에서 대규모 반핵시위가 전개되기도 했다. 이처럼 시민사회의 저항이 격렬하게 이어지자, 결국 덴마크 의회는 공식적으로 핵발전 도입 계획을 철회하게 된다. 정부 주도의 일방적인 국가에너지 정책에 시민사회가 반기를 들고 집요하게 투쟁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우유부단하고 불확실한 탈핵선언

핵발전의 위험성을 깨닫고 단계적 폐쇄를 추진하는 국가도 점차 늘어났지만, 한편에서는 핵발전의 안정성과 경제성을 칭송하며 유지 및 확장에 나서는 국가도 많았다. 후자의 길을 택하는 국가들은 대부분 부존자원이 빈약(프랑스, 영국, 일본)하거나, 인구증가와 경제성장으로 안정적인 전력수급이 요청되는 국가(중국, 인도)들이 대부분이었다.

한국 역시 일찍이 후자의 길을 택한 국가였다. 최근 10년간 한국 정부는 핵발전 정책을 강화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 왔다. 인접 국가인 일본에서의 참사를 목격하고도 이명박-박근혜정부는 신규 핵발전소 건설과 핵발전 기술 수출을 국가 에너지정책의 근간으로 삼아왔다. 일본이 후쿠시마 사고로 주춤한 사이 한국이 국내외 핵발전 시장에서 우위를 확보할 수 있는 호기로 여겼던 것이다. 이에 따라 2008년 이명박정부는 제1차 국가에너지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2007년 전체 전력설비의 27%를 차지하는 핵발전 비중을 2030년까지 41%로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뒤이은 박근혜정부도 핵발전 위주의 국가 에너지정책 기조를 유지했다. ‘안전우선주의에 입각한핵발전 사용을 바탕에 두면서, 핵발전 의존도를 장기적으로 낮추되 신규 핵발전소 건설(18)은 예정대로 추진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결국, 경제발전이라는 미명 하에 핵발전 산업을 국가 차원에서 육성하고 지원해온 것이다. 최근 문재인정부가 탈핵을 선언했지만, 이로써 탈핵시대가 도래하리라는 기대는 아직 섣부르다. 고리1호기의 영구정지에 이어, 건설 중인 신고리 5, 6호기 공사를 일시 중단했지만, 신고리 4호기와 신울진 1, 2호기의 건설 중단은 아직 언급조차 없기 때문이다.

그간 한국사회에서 오래도록 이어진 정부 주도의 에너지정책은 시민사회와 주민들의 참여기회를 박탈해왔다. 덴마크 시민사회가 지속적인 투쟁을 통해 핵발전 도입 백지화를 쟁취해냈듯이, 우유부단하고 불확실한 새 정부의 탈핵 선언을 현실화하기 위한 대중운동이 필요한 시점이다.

 

*[참고문헌]

노진철. 2011. “핵발전과 위험사회에서의 정치적 결정”, <기억과 전망> 통권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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