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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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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17.07.14 18:31


있는 집 자식

있는 집물려받는 게 교육인가?

 

이주용정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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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시민사회단체 19개가 모여 구성한 '특권학교 폐지 촛불시민행동' 출범 기자회견. [사진 : 교육희망(박수선)]



동네 학원가를 지나가다보면 건물마다 연달아 늘어선 학원들에서 걸어놓은 현수막 문구들이 눈에 띈다. 학원들은 당신의 자녀를 다른 학생과는 다르게, 다른 학생보다 더 우수하게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한다. 차라리 이렇게 대놓고 광고하는 학원들은 양반일지도 모른다. 서울 강남에는 있는 집들혹은 상위권 학생/학부모들의 네트워크를 통해 알 사람만 아는학원들도 많다. 아예 특목고, 자사고 학생들만 따로 모아 입시관리해주는 학원도 있다. 한국의 교육은 양지에서건 음지에서건 학생들에게 청소년 시기부터 차별과 배제를 내면화한다.

최근 외고자사고 폐지 논란이 크게 일었다. 더 많은 돈을 지불하고 일반고와는 다른 교육과정을 제시하며 더 좋은 대학입학을 보장해, 탄생부터 특권학교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특목고자사고 문제가 다시 도마에 오른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대선공약 중 교육부문에서 복잡한 고교체제 단순화를 내걸고 외고국제고자사고를 일반고로 전환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신임 김상곤 교육부장관 역시 외고자사고 폐지를 주장한다. 다만 전국 외고국제고자사고 84개교 가운데 30개교가 몰려 있는 서울시 조희연 교육감이 자사고 학부모단체 등의 반발을 의식해서인지 일반고 전환에서 한 발짝 물러나면서 사태는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든 모양새다. 하지만 교육서열화냐 하향평준화냐등 지난 십 수 년 간 외고자사고를 둘러싼 쟁점들은 여전히 그대로 남아 되풀이되고 있다.

 

학교 이름에 값을 매기는 장사

논란이 한창이던 지난 6월 말, 여론조사업체 리얼미터는 외고자사고 폐지 여부를 묻는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응답자의 52%가 폐지에 동의했고, 유지해야 한다는 응답은 27%에 그쳤다. 특히 학부모들의 경우 폐지 의견이 55%, 학부모가 아닌 응답자(51%)보다 더 강하게 외고자사고를 없애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자녀의 학교현장을 직접 목도하는 학부모들은 교육서열체제의 문제를 더 민감하게 느끼는 것이다.

<2016년 교육통계연보>를 보면 2016년 기준 우리나라 전체 고등학교는 2,353개교, 학생수는 1752,457명이다. 이 가운데 과학고영재고외고국제고 등 특목고와 자사고는 112개교 75,250명으로 학교 수로는 4.8%, 학생 수로는 4.3% 정도다. 말하자면 4% 내외의 상위권이 현재 고교 서열체제의 최상층에 위치해 있다. 이들 고교는 애초에 성적 상위권 학생을 선발하고 그에 따라 높은 명문대 진학률을 자랑한다. 명문고에 입학하기 위해 학생들은 초중학교 때부터 입시전쟁을 치른다. 2000년대 중후반부터는 아예 국제중학교가 들어서면서 초등학교는 고사하고 유아아동기 때부터 입시준비를 시작한다.

더 좋은 직장을 구하기 위해 명문대를 가야하고, 명문대를 가기 위해 명문중고등학교를 가야하는 이 입시의 연쇄는 부모의 재력이 뒷받침한다. 자사고 학비는 일반고의 3배에서 많게는 8배에 이르며, 웬만한 대학등록금 수준을 훌쩍 상회하기도 한다. 외고자사고를 지망하는 중학생들의 사교육 참여율은 84~89%에 달해 일반고 지망생(66%)보다 훨씬 높았다. 액수로 보더라도 자사고 지망생 가운데 60%는 사교육비로 월 50만 원 이상, 30%는 무려 월 100만 원 이상을 지출한다[<고교유형별 중고교 사교육 실태 설문조사(2015)>].

 

교육, 상품과 권리 사이에서

고등학교 가운데 사립학교 비중이 40%가 넘고, 각종 특권학교가 명문대 진학을 틀어쥔 현실에서 교육의 국가책임은 무색하고 공공재로서의 교육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 고교 서열체제는 학벌과 함께 양질의 교육을 받을 권리를 돈으로 사도록 만든다. 어릴 때부터 얼마나 많은 사교육을 받느냐에 따라 학교의 수준이 결정되고, 대학의 서열이 정해지며, 미래의 가능성이 달라진다. 오늘날 교육은 그 자체로 상품이다. 구매력을 갖추지 못하면 누릴 수 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이는 중고등학교 차원의 문제에서 그치지 않는다. 외고자사고를 폐지하더라도 대학 서열이 그대로 남아있는 한 결국 더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한 음성적 관행들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서울 강남을 비롯해 명문대 진학률이 높은 특정 학군을 형성하거나 대학입시를 향한 사교육 경쟁이 더 치열하게 펼쳐질 수도 있다. 이른바 고교평준화이후 기존의 전통적인 명문 고등학교들을 대신해 특목고자사고 열풍이 불붙었던 것과 마찬가지다.

학교 서열체제를 고집하는 이들은 짐짓 교육의 하향평준화를 우려한다. 분명 특목고나 자사고의 교육방식은 일반고에 비해 학생 개개인에게 맞춤형 교육을 제공할 수도 있고 더 양질의 교육과정을 적용할 수도 있다. 이는 대학 서열체제 하 상위권 대학들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왜 그 양질의 교육을 지불능력을 가진 4~5%의 소수가 독점해야 하는가? 학령인구가 줄어들고 있다면 교사의 수를 줄일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교사를 충분히 확보하고 학급당 학생수를 획기적으로 줄여 기존에 자사고에서 제공하던 수준의 교육을 모든 일반학교에서 제공하도록 할 수도 있다. 대학교육에 대한 공교육비 지출이 OECD 평균의 절반을 겨우 웃도는 이 나라에서, 교육재정을 확충해 대학의 상향평준화를 계획할 수도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의외로 단순하다. 극소수에게 교육의 기회를 몰아주고 그들의 부와 권력을 대물림하도록 해줄 것인가, 아니면 모두에게 양질의 교육을 누릴 권리를 제공할 것인가. 누구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의 문제가 있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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