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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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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17.07.14 17:31

남색초원하늘소

 

텃밭 옆 화원 너른 비닐하우스 안에서는 국화 순 따는 일이 한창이다. 끝도 없이 펼쳐진 화분의 국화 순을 하나하나 사람 손으로 따야 한다. 조금씩 자랄 때마다 거듭거듭 순을 따 국화를 여러 모양으로 만들어간다. 이 일은 이제 반 뼘 남짓 자란 국화가 다 자라서 팔려나가는 가을까지 계속 될 것이다. “국화 꽃 한 송이 피우려면 정말 손이 수도 없이 가야 해요.” 화원에서 품을 팔고 계신 이웃 텃밭 아주머니 말이다. 가을 국화 향기에는 한여름 내내 찜통 같은 비닐하우스 안에서 흘린 노동자 땀내가 배어 있다는 걸 알았다.

비닐하우스 둘레에는 심지도 가꾸지도 않았는데 절로 자라서 지천으로 꽃 핀 국화도 있다. 들국화 종류인 개망초다. 비닐하우스 옆에 자라던 개망초는 다 베어졌지만, 손이 닿지 않는 뒤꼍에 남은 개망초는 떼를 지어 자라나 꽃을 피웠다. 개망초는 개항 이후 북아메리카에서 바다를 건너와 자라기 시작한 귀화 식물이다. 지금은 사람 사는 곳이면 어디서나 흔하게 자라는 풀이 되었다. 여름철에는 길가, 공터, 아파트 둘레 빈 땅은 개망초로 뒤덮인다. 묵정밭은 한두 해 뒤엔 개망초 밭이 되고 만다. 공터를 가득 뒤덮은 개망초 풀밭에 앉아서 가만히 보고 있으면 보잘 것 없는 잡초 개망초가 만드는 놀라운 세상을 만날 수 있다. 개망초 밭에서 벌레들 향연을 볼 수 있다. 꽃을 찾아 날아온 나비와 벌, 꽃등에를 볼 수 있고, 풀을 먹는 온갖 노린재와 잎벌레, 풍뎅이, 메뚜기, 베짱이를 볼 수 있다. 또 이런 벌레를 노리고 온 파리매, 무당벌레, 풀잠자리 애벌레, 사냥벌, 기생벌, 사마귀, 거미를 볼 수 있다.

벌레들 가운데 남색초원하늘소가 유난히 눈에 띈다. 푸른 딱지 날개와 더듬이에 난 검은 털 뭉치는 초원의 신비함을 지닌 듯 보인다. 남색초원하늘소를 처음 본 사람들은 마치 천연기념물이라도 만난 것 마냥 신기해한다. 개망초 밭에서 비교적 흔하게 볼 수 있는 곤충이라고 하면 조금 실망한 듯해도 여전히 가장 인상적인 벌레로 여긴다.

남색초원하늘소는 개망초, 고들빼기, 쑥 같은 국화과 식물 줄기 속에 알을 낳는다. 고들빼기처럼 줄기 표면이 질기지 않은 풀에는 곧장 줄기에 산란관을 꽂고 알을 낳고, 개망초 같이 섬유질이 많은 줄기는 빙 돌아가면서 큰 턱으로 씹어서 흠집을 내고 알을 낳는다.[<곤충의 밥상>,정부희,상상의숲] 마치 누군가 개망초 위쪽 새순을 뚝 부러뜨려 놓은 것처럼 시들어 고개를 숙인 걸 보게 되면 남색초원하늘소가 알을 낳은 것일 수 있다. 알을 까고 나온 애벌레는 줄기 속을 파먹으면서 자란다. 날씨가 추워지면 뿌리 쪽으로 파고 내려가서 애벌레 상태로 겨울을 난다. 봄에 번데기로 되었다가 다시 어른벌레로 탈바꿈해서 줄기 밖으로 나온다. 어른벌레는 5~7월 개망초 같은 국화과 식물에 날아와 잎과 줄기를 갉아먹는다. 개망초 밭에서 자란 남색초원하늘소는 거기를 떠나지 않는다. 개망초를 먹고 개망초에서 짝짓기하고 개망초에 알을 낳는다. 그러니 5~7월에 개망초가 무리지어 자라는 풀밭에 가면 남색초원하늘소를 쉽게 만날 수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곤충을 보면 먼저 이로운 것인지 해로운 것인지 부터 따지고, 해로운 곤충은 무조건 없애야 하는 것으로 쉽게 생각해왔다. 그런데 정말 이롭기만 하거나 해롭기만 한 곤충이 있을까? 곤충은 이로운 곤충과 해로운 곤충으로 무 자르듯 나눌 수 없다. 국화과 식물을 먹고 자라는 남색초원하늘소 역시 그렇다. 국화과 식물에는 원예용이나 약 또는 푸성귀로 먹으려고 키우는 것도 있지만, 논밭에 자라나 농사에 해가 되어 잡초로 여기는 것도 있다. 남색초원하늘소가 좋아하는 개망초만 놓고 봐도 그렇다. 아무데서나 마구 자라는 몹쓸 귀화식물로 여겨 뽑아 버리는 사람이 있고, 자라 올라오는 새순을 봄부터 여름 내내 뜯어서 나물로 먹는 사람이 있다. 개망초 풀밭 속에서 펼쳐지는 벌레들 향연을 보고 있으면 무엇이 이로운 것이고 해로운 것인지가 무색해질 것이다. 개망초 풀밭 속에서는 해롭고 이로운 것이 아니라 서로서로 촘촘하게 이어진 생태 그물망을 보게 될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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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강우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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