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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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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단계 하청구조,

위험의 외주화가 부른 참사

 

이김춘택경남

 


스물일곱 지훈씨는 전남 강진에서 알바천국 광고를 보고 거제로 왔다. 광고에는 일급 15만원, 4대보험 회사부담, 당일 바로 입사라고 되어 있었다. 구인광고에 나와 있는 핸드폰 번호로 전화를 하니 당장 오라고 했다. 하지만 막상 거제에 와보니 광고처럼 당일 입사가 되는 건 아니었다. 지훈씨 말고도 서울에서, 강원도 원주에서 온 또래가 2명 더 있었는데, 전화를 받았던 제일ENG’ 과장이라는 사람이 모텔을 잡아주며 대기하고 있으라고 했다.


하청에 재하청대체 난 어느 회사 소속이지?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다. 그러던 어느 날 제일ENG’가 아닌 현주기업이라는 곳에서 사람이 왔다. 그 사람이 시키는 대로 삼성중공업에 가서 반나절 교육을 받으니 출입증이 나왔다. 그런데 출입증에는 서우기업이라고 적혀 있었다. 현주기업이면 어떻고 서우기업이면 어떠랴. 지훈씨는 드디어 일을 하게 된 것만으로도 기뻤다. 다음 날부터 삼성중공업에 출근해서 해양플랜트를 만드는 곳에서 도장작업 보조로 일했다.

며칠 뒤 지훈씨는 씨엔씨라는 곳에서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한 여자 대리는 사정이 생겨서 지훈씨 소속이 현주기업에서 씨엔씨로 변경되었다고 했다. 지훈씨는 슬슬 불안해졌다. 그런데 같이 일하는 아저씨들은 지훈씨에게 너는 맥스소속이다라고 말했다. 도대체 뭔 소린지. 지훈씨는 지난 번 통화했던 씨엔씨에 전화를 해 왜 사람들이 자신을 맥스 소속이라고 하는지, 맥스는 어떤 회사인지 물었다. 씨엔씨 소속이 맞고 씨엔씨가 맥스하고 계약을 한 것이라고 알려줬다. 점점 불해진 지훈씨는 씨엔씨에 근로계약서는 안 쓰냐고 물었다. 그렇게 몇 번을 전화하고 나서야 근로계약서를 쓰자는 얘기를 들었다. 지훈씨는 저녁에 퇴근을 하고 같은 운명(?)의 또래 3명과 함께 계약서를 쓰러 사무실을 찾아갔다. 알려준 주소대로 찾아갔지만 사무실이라곤 눈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전화를 하니 사람이 나와 동네 작은 커피집으로 안내했다. 간판은 커피집이었는데 들어가 보니 책상 두 개가 놓인 사무실이었다. 어쨌든 그 커피집 간판의 사무실에서 지훈씨는 근로계약서, 아니 용역계약서라고 된 계약서를 썼다. 그런데 이상한 건 월급이 맥스에서 반이 들어오고 씨엔씨에서 나머지 반이 들어온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그랬다. 월급이 두 군데서 각각 입금되었고 씨엔씨에서 받은 월급명세서에는 맥스급여액이라고 구분되어 적혀있었다. 그러면 맥스하고도 근로계약서를 써야하는 것은 아니냐고 물었지만 그럴 필요는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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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청 삼성중공업이 책임져야 한다

51일 오후 3. 삼성중공업에서 작업 중이던 크레인 붐대가 무너지는 사고가 났다. 무너진 붐대는 마침 휴게시간에 화장실 근처에서 쉬고 있던 노동자들을 덮쳤다. 119에 신고해 구급차가 왔지만 사람도 지나다니기 힘든 복잡하고 어지러운 현장에서 부상자를 병원으로 이송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첫 번째 부상자가 병원에 도착하는 데에만 45분이 걸렸다. 결국 6명이 사망하고 25명이 크고 작은 부상을 당했다. 이들 31명은 전부 하청노동자였다. 그것도 8개 하청업체에 각각 소속되어 있었다. 8개 하청업체 소속이냐 하면 또 그것도 아니다. 하청업체 아래 또 각기 다른 물량팀이나 인력업체 소속으로 되어 있었다.

사망자 유족들은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피 말리고 진 빠지는 보상협상을 했다. 대통령선거를 며칠 앞두고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주요 대선 후보들이 잇따라 장례식장을 찾았고 유족들에게 삼성이 책임지고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돌아갔다. 하지만 삼성에서는 부장이 협상에 나올 뿐 실질적인 협상은 하청업체 협의회가 맡았다. 결국 협상에 지친 유족이 하나, 둘 보상에 합의하고 장례를 치렀고, 나머지 유족 세 가족은 삼성의 추가보상을 요구하며 아직 협상 중이다.

부상당한 하청노동자에게는 며칠 뒤부터 하청업체 총무나 물량팀장이 찾아왔다. “산재신청하면 삼성에서 다시 일하기 어려울 수 있으니 그냥 공상 하는 게 어떻겠냐고 은근히 부탁을 했다. 산재신청을 하긴 해야겠는데 정말 앞으로 삼성에서 일하지 못하게 되는 건 아닌지 하청노동자들은 걱정이다. 하필이면, 입원 중인 병원이 증축공사 중이어서 공사현장에 타워크레인이 서 있다. 그 크레인이 움직일 때 혹시 나에게 다가오는 것은 아닌지 머리칼이 쭈뼛 설 때가 있다고 한다. 삼성중공업이 책임지지 않으면 25명 부상 생존자들에 대한 장기적인 치유대책은 마련되기 어렵다.

6명 사망자 중에는 91년생이 한 명 있다. 스물일곱 살. 사고 다음날 문득 지훈씨 생각이 나 전화를 걸었다. 출근했다가 일을 안 한다고 해 통근버스를 타고 나가는 길이라고 했다. 혹시나 싶어 물으니 자기는 사고난 곳과는 다른 프로젝트에서 일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는 “2주 동안 작업을 안 한다는데, 그럼 월급을 못 받는거냐고 묻는다. 지훈씨는 용케 사고가 난 곳에서 일을 하지 않아 조만간 작업중지 명령이 풀리면 다시 출근을 할 수 있다. 다만 지금도 자신의 사장이 씨엔씨인지 맥스인지 아니면 출입증에 적힌 서우기업인지 궁금하다.

스물일곱 또 다른 노동자는 지금 거제 백병원 영안실 냉동고에 누워있다. 군대 제대하고 나서 곧바로 조선소 일을 시작했다. 대우조선에서 꼬박 3년을 일했다. 간혹 일이 없을 때 삼성중공업에서 알바를 했다. 그러다 삼성중공업으로 자리를 옮겼다. 201751일은 삼성중공업으로 자리를 옮겨 출근한 첫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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