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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차

11노조 체제의 종결

무엇을 말하는가

  

백종성정책선전위원장

 

11조직 노동조합이 상황과 무관하게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좋은 것은 아니다. 9년 전, 기아차에 11노조가 만들어진 맥락은 당시 독립적 비정규직 노조에 속한 노동자들을 개별적으로 흡수해 비정규직 노조를 거세하고,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을 통제하기 위함이었다. 마찬가지로 2007년부터 2008년까지 11노조 전환이 3번이나 부결된 현대차의 경우, 정규직 집행부가 11노조 전환을 다시 검토한 때는 2010년 대법원 불법파견 판결을 매개로 비정규직 투쟁이 다시 불붙던 국면이었다. 당시 현대차 이경훈 집행부는 11조직 전환을 통해 비정규직 노동자의 파업을 통제하려 했으나 이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거부로 무산되었다.

이렇듯 문제는 맥락이다. 이번에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에서 쫓겨났다. 기아차 김성락 집행부는 반대에 아랑곳하지 않고 총회를 열어 조합원 자격규정을 기아차에 근무하는 자에서 기아차()에 근무하는 자로 바꿨다. 애초 독립 노조였다면 모를까, 이미 11조직이 구축된 상황에서 이루어진 이 조치는 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는 기아차 소속이 아니라는 현대·기아차 재벌의 입장, ‘기아차 비정규직이 아니라 하청업체 정규직이라는 입장과 같다.
정규직 지부가 비정규직을 내친 배경에는 기아차 자본의 신규채용강행과 이를 거부하며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는 화성 사내하청 분회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있다. 사법부조차 정규직으로 전환하라고 명한, 이미 10년 넘게 기아차에서 일한 하청노동자들에 대한 신규채용이다. 신규채용은 이미 구속되었어야 할 불법파견·노조파괴 범죄자 정몽구를 면죄한다는 점에서, 전체 기아차 비정규직 중 약 20% 만을 그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사내하청 비정규직 근절과 공정 자체의 정규직 전환이 아니라, 일부가 정규직 신입사원이 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문제다. , 신규채용 합의는 자본의 불법파견을 면죄해 비정규직 양산 구조를 온전히 보존한다. 김성락 집행부는 총회를 통한 결정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없다, “·하청 노조가 분리되어 있는 사업장이 허다한데 무엇이 문제냐고 거듭 주장했다. 비정규직 노조를 통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11노조 체제는 9년 후 비정규직을 노조에서 내쫓는 것으로 종결되었다.

무엇을 평가할 것이며, 또한 무엇을 할 것인가. 확실한 것은 다음이다. 첫째, 민주노조 운동 내에서 벌어진 비정규직 축출을 실천으로 반성하지 못한다면 이 충격은 금새 다시 무덤덤해질 것이다. 둘째, 모두가 알고 있듯 기아차 사태는 비단 기아차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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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명론을 넘어

김성락 집행부는 압도 다수인 정규직 조합원의 조합적 이해를 자극함은 물론, 신규채용에 지원해 정규직이 되고자 하는 일부 비정규직의 조합적 이해 또한 자극했다. 전노협 이래 민주노조 운동의 원칙으로 자리매김한 연대성은 그렇게 버려졌다. 정규직은 비정규직을 버렸고, 싸우지 않는 비정규직은 싸우는 비정규직을 버렸다. 우리는 어떻게 그 정신을 다시 세울 것인가? 현 상황을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 격차가 낳은 필연으로 설명하는 것은 구체적 상황에 대한 파악을 항상 맞는 말로 환원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 ‘사태는 그렇게 흘러갈 수밖에 없었다는 숙명론에 지나지 않는다. 바로 그렇기에, 현 사태를 노동계급의 불균등한 임금·복지 수준이 낳은 필연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더군다나 1998년 파견법 제정으로 국가와 자본이 대규모 비정규직 양산에 나선 이래, ·하청 노동자의 임금 격차는 상수이며 우리는 항상 그 조건 위에 있었다. 민주노조 운동 내에서 발생한 이 참담한 사태를 원·하청 임금 격차라는 구조로 환원하는 순간, 얻을 수 있는 결론은 죽어봐야 저승을 안다는 자조 이외 아무것도 아니다. 그리고 경제위기에 우익이 득세하는 많은 경우가 드러내듯, 그 자조와 기다림이 옳은 것도 아니다. 지금 내가 발 딛은 공간에서 투쟁을 조직할 수 없다면 붕괴와 파국의 시기를 감당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중요한 것은 지금의 실천이다.

 

조합주의 : 대중적 정치운동과 정치적 대중운동의 부재

정규직 노동자가 비정규직 노동자를 배제하는 현 상황은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 격차가 낳은 필연적 결과인가? IMF 구제금융 이후의 역사를 살필 때, 그 인과관계는 오히려 역에 가깝다. 국가와 자본의 위기전가에 맞선 투쟁이 각개격파 당한 결과, 오늘의 고용구조가 자연과 같은 것이 되었다는 말이다. 계급적·연대적 실천의 부재와 패배가 오늘의 불균등성과 위기를 결과했다고 보는 편이 옳다. 이렇다 할 강령도, 축적된 경험도 없이 IMF 구제금융이라는 거대한 위기를 맨몸으로 맞이한 한국 노동계급의 패배였다. 대중투쟁과 정치이념의 결합은 완전히 실패했다. 아니, 제대로 된 시도조차 없었다.

물론, 현존하는 정규직·비정규직의 임금·생활수준 격차는 소위 정규직 정서의 토대이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마침내 다가올 붕괴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이를 극복할 실천의 단초를 만드는 것이다. 우리가 진정 평가해야할 것은 무엇이며, 또한 그 평가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물론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조합주의의 민낯이다. 중요한 것은 그 다음이다. 조합주의가 강화한다는 것은, 주로 임단투를 매개로 한 노조운동 이외의 운동이 일터에 존재하지 않는 상황을 뜻한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가 임단투를 백번 반복한다고 해도 연대적 계급의식은 형성되지 않는다. 공장 내 고용형태의 차이를 넘어 단결해야 한다는 의식도, 공장 담을 넘어야 한다는 의식도 형성되지 않는다. 심지어 비정규직이라는 신분이 계급성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다. 지난 51일 발생한 삼성중공업 집단 산재사망 참사에 고용노동부가 명한 작업중지 조치에, 노동조합이 없는 삼성중공업 비정규직 노동자들 상당수가 보인 1차적 반응은 당장 먹고 살길이 막힌다는 것이었듯 말이다. 조직화되지 않은 비정규직 노동자가 용기를 내는 것은 훨씬 더 어렵다. 중요한 것은 조직화, 그리고 정치화다.

정규직이 비정규직을 배제하는 상황, 명색이 활동가 조직인 현장조직의 태반이 항시적 선대본에 지나지 않는 현 상황이 말하는 바는 무엇보다 정치적 대중운동과 대중적 정치운동의 부재, 그리고 그 절실한 필요다. 다른 의식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다른 투쟁을 조직해야 하며, 그 투쟁을 통해 다른 기관을 건설해야 한다. 이를 통해 다른 의식의 거처를 일터 내에 구축해야 한다. 우리는 노동조합과 현장조직의 뒤에 숨지 않는 대중적 현장정치운동을 전개해야 하며, 전 계급의 이해에 근거한 정치적 대중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2017, 노동자 운동은 정치적 대중운동이어야 하며, 대중의 정치운동이어야 한다. 기아차 사태의 교훈은 모두의 타산지석이다.


노조 분리에 반대한 기아차 원·하청 노동자들과 어떻게 만나 무엇을 할 것인가

우리가 연봉기준을 정하고 그 이상 연봉을 받는 노동자를 모두 민주노총에서 축출할 것이 아니라면, 자조하는 대신 무엇인가 도모해야 한다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다음이다. “우리는, 그리고 현장 활동가들은, 노동조합 분리에 반대한 7천여 기아차 원·하청 노동자와 어떻게 만나 무엇을 도모할 것인가?”

기아차 사태에 대한 혁신은 바로 그 기획과 실천에서 시작될 것이다. 활동가가 대중을 탓할 수 없다면, 우리는 그 대중을 조직할 방안을 제출하고 실행에 옮겨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노조 분리 총회를 거부한 활동가들의 향후 실천이다. 총회 결과가 모두를 짓누르는 상황에서 그 실천은 고통을 수반할 것이나, 미래를 잉태하는 운동이 고통을 수반하지 않은 적이 있었던가. 광장항쟁을 일터로 확장해야할 이때, 조직노동자가 6월 총파업으로 거대한 미조직 대중과 만나야할 이때에 벌어진 일이다. 사태에 짓눌려 있기에는 정세가 엄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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