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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 이겨 낸

살아남은 여성들의 용기

 

지수사회운동위원회

 

지금으로부터 1년 전, 517일 새벽 1시경 강남역 인근의 한 노래방 건물 공용화장실에서 한 여성이 무참히 살해당했다. 범인은 이 장소에서 대상자를 물색하며 7명의 남성을 보낸 뒤 첫 번째 들어온 여성을 살해했다. “평소 여성에게 무시당해 화가 나서 죽였다라는 살해동기가 범인의 입을 통해 흘러나왔고, 해당범죄는 여성혐오범죄, 페미사이드(여성살해)로 명명되었다. 정부와 경찰은 즉각 사건의 성격을 한 조현병환자의 묻지마 범죄로 축소하면서, 공용화장실 관리감독 강화, 정신질환자에 대한 관리체계 강화로 대책을 마련하는 등, 해당사건이 여성혐오범죄로 사회화되는 것을 철저히 차단하고자 했다. 그러나 여성들은 강남역으로 모였고, “제가 아직 살아있는 건 운이 좋아서 입니다” “여혐은 이제 여성의 생존 문제입니다등 추모와 분노의 포스트잇을 남기고 추모의 행진을 함께하면서 여성혐오범죄임을 분명히 했다.

 

도망치지 않고 맞서 싸우기 시작했다

정말 바꿔야 할 것은 화장실이 아니라, 정신질환자 관리가 아니라, 공공연히 여성혐오적 표현을 발화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사회, 여성에 대한 폭력을 일상적으로 용인하는 사회 구조였다. 온라인상의 여성혐오는 사이버 공간을 넘어 현실에서 여성에 대한 물리적 폭력을 증가시켰고, 제도적 차별을 정당화하는 방식으로 작동했다. 강력범죄 피해자 84.7%가 여성이며 성평등지수가 145개국 중 115위인 한국사회에서 작동하고 있던 가부장적 권력관계, 경제적 불평등, 성차별적인 문화규범 속에서 여성에 대한 혐오와 폭력은 이미 공기처럼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강남역 살인사건을 계기로 여성들은 성차별, 여성에 대한 부정과 비하, 여성에 대한 폭력, 남성 우월주의, 여성의 성적 대상화를 포함한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을 여성혐오로 명명하기 시작했다. 길고 부당한 여성차별의 역사 속에서 불편함과 피해를 견뎌왔던 여성들은 여성혐오라는 워딩을 통해 자신의 경험을 말할 수 있는 언어를 획득했다. 여성들은 용감해졌고, 자신의 경험에 대해 말하기를 시도했고, 페미니즘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부당함에 맞서 함께 싸우기 시작했다. ‘강남역 10번 출구’, ‘페미당당’, ‘불꽃페미액션등 페미니즘 그룹들도 생겨났다. 이후 여성들은 강남역 살인사건의 의미를 규정하는 투쟁에서, 정부의 임신중절수술 처벌 강화계획으로 촉발된 낙태죄 폐지투쟁에서, 탄핵정국 속 여성혐오와의 싸움에서 투쟁의 주체로 나섰다.

 

여성혐오 사회를 바꾸기 위해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1년의 시간이 흘렀다. 여성들이 추모하고 움직이고 싸워온 1년 동안 여성혐오는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화두로 떠올랐고,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던 여성들의 피해와 경험들은 수면 위로 부상했다. 그러나 아직도 갈 길이 멀기만 하다. 정부의 저출산정책은 출산지도 파문을 낳으며 정부의 인식수준을 고스란히 보여줬고, 헤어지자는 여자친구를 감금 폭행강간한 가해자가 집행유예로 풀려나고 있으며, 일베 회원의 여고생에 대한 납치성폭력 예고글로 인해 해당학교가 3일간 폐쇄되고 수백 명의 여학생들이 공포에 떨어야 했다. 기안84, 박태준 등 남성 웹툰작가들의 여혐스토리는 여전히 여성에 대한 왜곡된 시선을 드러내고 있고, 일베를 중심으로 한 온라인상의 여성혐오는 수그러들지 않고 있으며, 소라넷 폐쇄 이후에도 유사사이트들은 여전히 활개치고 있다.

남자 할 일 따로, 여자 할 일 따로를 외치며 자신은 결코 설거지 따위는 하지 않는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대선 후보가 돼지발정제로 강간 모의에 가담했던 사실을 거리낌없이 말하는 사회,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자처하면서도 성소수자의 존재를 부정하며 소수자 혐오에 눈감은 대선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사회, 여성의 몸과 관련한 가장 큰 이슈인 낙태죄 폐지는 대선시기 주목조차 받지 못하는 현실 속에 우리는 살고 있다.

강남역 살인사건의 범인은 집을 나와 일을 시작할 때부터 여성들로부터 알게 모르게 피해를 받았다면서 한 여성이 자신의 발 앞에 담배꽁초를 던졌는데, 화가 치솟았다. 화가 가라앉지 않은 상태에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여성들이 당하고 있는 수많은 폭력의 피해에는 눈감으면서, 여성에게 받은 피해만큼은 작은 것조차 참을 수 없다는 남성중심의 가부장적 사회 속에서 여성들은 더 이상 눈감고 침묵하지 않는다. 517일 강남역에서 1년 전 여성혐오살인의 피해자를 추모하고, 두려움을 용기로 바꿔내는 추모문화제가 준비되고 있다. 살아남은 여성들이 다시 용기를 내겠다고, 여성들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다짐하는 자리에 우리 함께 연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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