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가입

변혁정치

> 변혁정치

877.8.9 투쟁을 동지여 기억 하는가

 

정경원노동자역사 한내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가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전두환의 항복으로 받아들이고 이후 민주화를 위해 매진하기로 결정했던 6.29선언에 담기지 않은 게 있었다. 민주화 투쟁이 점점 번져 나갈수록, 그 중심에 섰던 노동자의 요구는 선언으로 해소되지 않았다.

6.29선언으로 민주화를 향한 광장의 투쟁이 정치권의 협상으로 넘어갈 무렵, 직선제 요구에 밀려 드러나지 않았던 노동3권 보장하라”, “저임금을 박살내자는 요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단결하면 바꿀 수 있다는 경험을 한 노동자들은 민주화란, 말뿐인 선언을 넘어 일하는 자의 생존권이 보장되는 것임을 보여주는 투쟁을 시작했다. 전국의 공단과 사무실과 병원에서 민주화를 완성하기 위한 투쟁이 시작되었다. 자본과 정권에는 한반도를 강타한 태풍 셀마만큼 위력적인 태풍이 몰아닥친 것이다.

 

울산에서 시작된 불꽃, 거제에서 구로까지 번진 들불

그 첫 불꽃은 75일 울산 현대엔진노동조합 결성으로 타올랐다. 미포조선에서는 회사가 노조설립신고서를 탈취하기까지 했으나 노조 설립을 막지 못했다. 현대중공업에서는 회사가 선수를 쳐 어용노조를 만들었지만 그동안 노조 결성을 준비해왔던 노동자들이 모여 노조민주화투쟁을 시작했다. 정주영은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노조를 인정할 수 없다고 했지만, 87년 노동자대투쟁은 정주영이 만든 현대계열사 대공장이 밀집한 울산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투쟁의 중심에는 국가가 양질의 노동력을 공급하고자 만든 공업고등학교의 졸업생들이 있었다.

현대계열사 노동조합 결성 소식이 전국의 노동자에게 전해지면서 투쟁은 순식간에 온산, 울산 공단을 거쳐 부산으로 옮겨 붙었고 다시 마산창원 공단으로, 거제로 번졌다. 폭발적인 투쟁이 남해안 전역을 휩쌌다. 인천을 시작으로 한 수도권 지역의 투쟁도 동시에 일어났으며 강원도에서는 탄광 노동자들이 투쟁했고 대구, 구미, 광주, 전북 등 전국적 노동자 투쟁으로 번져 나갔다. 6월 항쟁 기간 넥타이부대라 불렸던 사무전문직 노동자, 병원에서 일하는 노동자도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경적을 울리며 민주화에 동참했던 택시노동자들도 자신의 생존권 쟁취를 위한 투쟁을 전개했다. 7월부터 9월까지 발생한 노동자 투쟁은 3,458건이니 하루 평균 30건이 넘는다. 노동자대투쟁은 8월 중순경 정점에 올라 하루 평균 83건의 투쟁이 일어났다. 참가 인원은 122만 명을 넘어, 10인 이상 사업체 총 노동자 333만 명의 약 37%에 이르렀고,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1,827(55.2%), 운수업이 1,265(38.2%), 광업127(3.8%) 순이었다.

 

43_이땅노동운동사.jpg

생산장비를 앞세워 울산 시내로 진출하는 현대그룹 노동자들. [사진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노동자가 선택한 파업, 노동조합, 그리고 총회 민주주의

87년 노동자대투쟁 시기 노동자는 중요한 전통을 만들어냈다. 먼저 노동자는 자신의 요구를 관철하는 방법으로 파업을 선택함으로써 이를 자본에 맞서는 무기로 정식화했다. 그것도 선파업 후협상이었으니 단결과 힘에 의한 요구 관철을 실현할 수 있었다. 정권은 “6.29 이후 민주주의 실현을 틈탄 좌경용공세력의 준동을 우려하며, 만약 이런 세력이 있다면 엄단해야 한다고 떠들어댔고, 자본은 이렇게 한꺼번에 요구하면 경제가 어려워진다며 엄살을 피웠다. 언론 또한 노동자들에게 과격한 행동을 삼가고 자제할 것’, ‘차근차근 하나씩 풀어갈 것을 요구했지만 노동자들은 이에 굴하지 않았다. 무섭게 번지는 노동자들의 투쟁 앞에 노동부는 허둥댔고 언론을 양비론을 펴기 시작했으며 회사는 협상하자고 손을 내밀었다. 이때 노동자가 선택한 방식은 대표가 회사 측과 협상하는 동안 함성과 구호로 힘을 실어주는 것이었고, 더 나아가 광장으로 회사 임원을 불러내 모든 노동자가 지켜보는 가운데 진행하는 협상이었다.

또한 노동자는 조직을 만들어 요구를 모으고 자본에 대응했으며, 어용조직이 있는 사업장에서는 그들을 몰아내고 투쟁 현장에서 새로운 대표를 세워 자본에 대응하였다. 노동자대투쟁으로 노동조합이 일반화되기 시작했다. 조직의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총회를 민주노조의 기본 기구로 만든 것도 87년 노동자대투쟁이다. 민주노조운동을 가늠하는 많은 것들을 노동자 스스로 투쟁을 통해 만든 것이다.

이러한 노동자대투쟁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것이 아니라 수많은 디딤돌을 딛고 폭발한 투쟁이었다. 노동자는 독재정권의 탄압에 굴하지 않고 실패하고 좌절하면서도 다시 일어서 싸워왔다. 사회정치적으로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생존권 쟁취를 위해 투쟁해왔다. 해고와 구속을 마다하지 않았던 노동자들의 줄기찬 투쟁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 k2s0o1d6e0s8i2g7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