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가입

변혁정치

> 변혁정치

러시아 민중은

광장의 봄을 쟁취할 수 있을까

 

심성보충북

 

지난 326일 수도 모스크바를 비롯하여 극동의 블라디보스톡에 이르기까지 러시아 전역의 92개 도시에서 수 만 명의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현 러시아 정부 총리 메드베데프의 부정부패 혐의를 규탄하는 시위를 벌여 모스크바에서만 600명 이상이 체포되었다. 2014년 우크라이나 내전개입 이후 시작된 유럽연합의 대러시아 경제제재조치, 국제유가의 하락이 가져온 러시아 경제의 후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80%에 육박하는 압도적 지지를 받고 있는 푸틴 집권기간 중 근 5년 만에 처음으로 벌어진 이날의 시위는 심상치 않은 주목을 받았다.

 

러시아 전역에서 부패척결 시위가 일어나다

이 시위는 <반부패기금> 대표인 변호사 출신의 정치인 알렉셰이 나발니Alexei Navalny32일 소셜미디어를 통해 발표한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현 러시아 총리 메드베데프가 러시아 국내외 각처에 100헥타르가 넘는 여러 채의 초호화 별장, 고급요트, 포도밭 등을 축재한 사실을 폭로하고 재산형성 과정에 대한 해명을 공개적으로 요구한 데서 출발했다. 러시아 정부는 이를 2018년 차기 대선에 나서는 나발니가 지지자들을 규합하기 위한 도발이라고 일축했으나, 정작 메드베데프는 이같은 의혹에 대해 확실히 부정하지 못했다. 러시아 주요 언론매체는 이런 의혹에 대해 침묵했고, 러시아 두마(하원) 집권당인 통합러시아당의 의원은 물론 그 어느 야당 국회의원도 이 문제에 대해 언급하기를 주저했다. 그 사이, 나발니의 이 동영상은 유튜브에서 1,400만 회가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며 사회적 공분을 불러일으켰고, 메드베데프의 의혹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러 나서자는 그의 선전은 러시아 내 다양한 SNS를 통해 확산되었다. 이는 근래 보기 드물었던 광범위한 전국적 시위를 불러왔다.

이번 시위는 과거 야당 주도 하에 허가받은 시위들이 지정된 장소에서 정해진 구호와 단체 깃발이 가득 나부꼈던 상황과는 달리, 자발적으로 요구를 담은 손피켓과 구호로 모였다. 한편, 이 시위의 양상은 경찰의 해산과 집회 저지에 힘으로 충돌하기 보다, 인도를 따라 어느 공간에서든 다시 모여 시위를 이어갔고, SNS를 적극 활용하는 러시아 청년층의 시위 참여가 두드러졌다는 특징을 보였다. 흥미로운 점은 나발니가 다른 동영상을 통해 박근혜 탄핵을 이끌어 낸 우리나라의 촛불시위와 삼성 이재용 부회장 구속을 소개했다는 점이다.

이 시위를 주도한 나발니는 과거 러시아 자유주의 민주주의자들의 정당 <야블로코> 출신으로, 비등록 정당인 <진보당>을 이끌고 있으며, 2010년도에 미국 예일대학에서 월드 프로그램으로 반년 간 연수를 받기도 한 전형적인 친서방친시장자유주의자다. 당일 시위 현장에서 체포되어 구류 15일 처분을 받은 그는 자신의 지명도를 전국적으로 끌어올렸다는 성과를 거뒀을 뿐, 러시아의 정경유착 해소 문제, 더 나아가 이날 시위가 러시아 대중의 관심을 끌어모은 근본적 원인인 사회적 불평등의 심화 문제에 대한 어떠한 해결책도 제시하지 않았다. 한 주 뒤인 42일 자생적으로 이어진 시위에서도 나발니의 <반부패기금>, 전 유코스 그룹 회장 출신 올리가르히 호도르코프스키의 <열린 러시아> 등 그 어떤 그룹도 326일 시위에서 표출된 민심을 이어가려는 시도를 하지 않고 거리를 두었다. 326일 반부패시위 현장에서 근본적인 사회불평등 문제를 제기한 쪽은 <통합 러시아 노동전선>, <러시아 공산주의 노동자당>과 같은 좌파 활동가들이었다. 이들은 부패 총리 퇴진이나, 부패정권 퇴진으로 러시아 사회의 불평등 문제가 해결될 수 없으며, 근본적인 사회체제 변혁, 사회주의 체제 건설을 통해 미래의 희망을 찾을 수 있다고 군중들을 향해 선전활동과 토론을 벌였다.

 

애국주의 물결 속 저항은 멈추지 않는다

공교롭게도 43일 러시아 제2의 도시 페테르스부르그에서 일어난 지하철 테러로 인해, 반부패시위를 대신한 반테러시위가 러시아 전역을 휩쓰는 국면으로 급속히 전환되었다. 이어 지난 7일 화학무기 공격에 대한 응징을 명분으로 미국이 벌인 시리아 공군기지 폭격에 대해 테러조직 ISIS를 돕는 행위라고 러시아 정부가 반발하면서 러시아 정국은 포장된신냉전 기류 속에 애국주의 대 반러시아 테러리즘의 구도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나발니가 제기한 반부패시위는 지난 2014년 우크라이나 키예프의 마이단 시위처럼 러시아의 국가이익을 침해하려는 서유럽 세력의 사주를 받는 무책임한 선동으로 치부당했다. 지난 주말인 48일에도 모스크바에서는 여러 정당과 단체들이 주최한 시위가 이어졌지만, 러시아공산당이 개최한 집회에서 당수 쥬가노프는 자신의 연설 상당 부분을 미국의 시리아 공군기지 폭격 비판에 할애하며 메드베데프의 이름은 꺼내지도 않았다. 이미 사망한 지하철 테러의 용의자가 시리아에 소재한 우즈베키스탄 출신 테러조직과 연락을 주고받아 왔다는 러시아 당국의 수사결과 발표는, 러시아 정부의 대테러리즘 투쟁을 위한 애국주의 결집이라는 목적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다. 그러나 이제 러시아의 광장에는 어느 누가 이끌지 않아도 자신이 만든 손피켓을 들고 스스로의 요구를 주장하는 시위 시민을 자연스럽게 볼 수 있다. 러시아의 민중은 서서히 깨어나고 있으며, 사회적 불평등과 체제의 문제를 자신의 직접적인 문제로 인식하기 시작했음은 분명해 보인다


43_러시아 반부패시위02.jpg

△ 모스크바 푸취킨 광장에서 모인 3월26일 반부패 시위대.

© k2s0o1d6e0s8i2g7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