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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가 보내는 메시지

 : 민족국가와 국제제도 간의 딜레마

 

이유철영국 거주, 정치학

 


지난329, 영국 총리 테레사 메이는 브렉시트 협상개시를 의미하는 <리스본 조약 50> 발동을 알리는 서한에 서명했다. 이로써 영국은 지난해 국민투표에서 EU탈퇴를 결정한지 9개월 만에 EU와 본격적인 탈퇴 협상을 시작하게 된다. 이러한 브렉시트에 관한 논의는 보호무역주의 확산과 정치적 우경화에 집중돼 왔다. 그러나 막상 이러한 논의에서 지구화에 반대하는 이들이 왜 반자본이 아닌 극우적 배타적 민족주의로 향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부재했다. 이는 그들의 우경화의 속성과 그 의미는 무엇인지에 관한 의문이다. 좌파 정당들의 선전에도 불구하고 반자본이 아닌 민족주의적 극우 정치가 득세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본 글에서는 EU와 민족국가 간의 관계를 통해 브렉시트와 유럽 내 정치적 우경화 배경을 재조명해 보고자 한다. , 브렉시트를 민족국가에 의한, 초국적 제도인 EU에 대한 반발로 바라보고, 그 반발이 왜 일어나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에 대해 살펴보겠다.

 

브렉시트, 유럽의 극우화

EU 창설의 기원은 2차 세계대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30년대 국제경제 위기와 함께 찾아온 민족국가들의 보호주의와 민족주의의 고양은 전례 없는 대량살상으로 이어졌고, 유럽은 이러한 재앙을 방지하기 위한 국제적 제도 마련에 고심한다. 이러한 고민은 배타적 민족주의에 기반한 보호주의를 배척하고 경제적 상호의존 체제에 대한 기획으로 나타난다. 정치적으로는 1986년 단일 유럽의 정서 하에 많은 사안들에 대해 다수결 혹은 만장일치 투표 절차를 제도화하고, 경제적으로도 완전한 자유시장 의무를 부과하는 등을 통해 민족주권체제를 약화시키는 한편 경제적 부로 안정을 유인했다. 언뜻 보면 EU는 그 목적에 부합한 성공적 모델로 보였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부터 유로존 위기로 이어지는 자본의 위기는 EU의 자본 유인의 위기를 가져온다. EU는 이것들을 극복하기 위한 미래 EU의 청사진 <EU 2020>를 제출하지만 이는 대안이 아닌 더욱 노골화된 신자유주의 개혁과 기술집약적 산업화 방향이었다. 결국 회원국가 내 약자들에 대한 더욱 강한 소외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소외에 대한 저항은 EU 국가들 중 이러한 경향성에 가장 충실한 영국에서 나타났다. 브렉시트 국민투표 결과에서 드러나듯이 신자유주의적 경제체제 개혁에 의해 소외된 지역들, 세계시민적 사회에서 소외된 계층들은 브렉시트에 찬성했다. 문제는 이들의 정치적 극우화에 있다. 이들의 불만은 좌파 정당들이 내세운 반지구화 담론이 아닌 배타적 민족주의를 내세운 극우정당의 반이민 담론에 포섭되는 형태로 나타났다.

브렉시트가 가장 큰 화두였던 지난 영국 총선에서 EU잔류를 주장한 노동당은 참패를, 국민투표를 주장한 보수당은 압승을 거둔다. 그러나 이어진 국민투표에서는 보수당과 노동당이 유럽의 자유주의적 가치를 앞세워 EU잔류를 독려했으나, 시민들은 극우정당이 제시한 배타적 민족주의 프레임의 브렉시트를 선택했다. 그렇다고 좌파 정당 및 정치조직들의 반지구화 담론에 근거한 브렉시트 찬성여론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지난 총선에서 영국노총 사회주의 후보들의 선전이 그것이다. 그러나 현재 영국 내 인종주의적 반이민 분위기를 살펴보면 반지구화 담론보다는 배타적 민족주의 담론이 주류 정서를 대변함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좌파 정당의 충실한 계층들이 EU잔류를 주장하면서, EU회의론자인 코빈 열풍은 조금씩 사그라드는 형국이다.

이러한 반EU, 배타적 민족주의적 우경화 열풍은 비단 영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네덜란드 총선에서 친EU인 자유민주당이 제1(33/150)을 차지했으나, 연정 파트너였던 노동당은 참패, 최소 4개 정당과의 연정이 필요한 상황이다. 반면 반EU 극우성향의 자유당이 제1야당으로 떠올랐다. 오스트리아 대선에서 승리한 녹색당의 판 더 벨렌은 막판 이를 뒤집기는 했으나, EU탈퇴를 주장해 온 인물이었다. 프랑스도 반EU 극우성향의 르펜이 여전히 압도적인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으며, 이탈리아는 친EU 성향 집권당인 민주당의 당내 좌파의 탈당과 반EU 성향의 포퓰리즘 정당 오성운동및 극우정당인 북부동맹이 그 세력을 확장시키고 있다. 과거 EU헌법 부결 당시를 돌이켜 보면 이러한 유럽의 경향성은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라는 점도 인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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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가 보내는 메시지

EU, 반세계화 바람은 반자본보다 배타적 민족주의적 경향을 보이는가? 이를 추동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를 초국적 자본들을 대변하는 정치엘리트에 대한 반감만으로 볼 수 있는가? 왜 이들은 초국적 자본에 대한 반대가 아닌 배타적 민족주의로 나아가고 있는가?

민족국가와 국제제도 사이의 간극은 이에 대해 미약하게나마 이를 설명한다. 민족국가는 국제제도와 달리, 구성원들의 신뢰를 발생시키고 이를 유지하는 상징체계들을 흡수하며, 한 공동체에 대한 소속감을 강화시켜 민족구성원들 간의 응집력과 연대감을 강화시킨다. 이는 하나의 정체성을 형성, 이를 민족주의로 부르기도 한다. 나아가 민족국가는 이러한 이데올로기에 기반해 공적체제로서 구성원이 마주하는 공공위험의 관리자이자 재정의 담지자로서 기능한다. 특히, 산업화 사회에서 나타나는 전방위적 경제적 위기에 노출된 구성원들에 대한 위협을 공공의 재정을 통해 사회보장책을 구축하여 이들을 보호해 왔다.

그러나 EU와 같은 초국적 제도의 정체성, 즉 공동체에 대한 소속감은 민족국가가 지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EU의 정체성은 창설 취지에 있다. 구성국들 간 전쟁을 예방하고, 상호의존 강화에 기반하여 제도와 조약을 통한 공조체제가 그것이다. 따라서 EU는 사회문화적 동질성이 아닌 가치, 즉 자본주의, 사회복지, 자유민주주의, 인권 등과 같은 정치적, 경제적 자유주의에 기반해 있다. 이는 민족국가 단위에서 발생하는 민족주의와 같은 정체성에 기반한 연대감보다는 가치에 기반한 소속감에 가깝다.

문제는 이러한 가치에 기반한 정체성은 민족국가 구성인자들에게 위험으로 인식될 때, 언제든지 해체될 수밖에 없는 불안정에 기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가치의 실현을 위해 개별 민족국가 수준에서의 희생이 강요되고, 민족국가 단위의 구성원들은 자본과 정치 엘리트 계급으로부터 국내적 초국적 수준에서 이중적 배제와 소외를 경험하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근본적 한계점은 지구적 수준의 경제체제에 종속되어 있는 단위 국가의 국민들이 경험하고 있는 불가항력적 위험에 비해, 그 위험에 대비한 보호는 여전히 상당 부분 민족국가에 전가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한 점에서 이러한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민족국가 단위의 민족주의적 경향성은 더욱 공고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민족주의는 지구화에 저항하는 한 형태이며, 브렉시트는 세계화에 대항한 민족국가의 봉기이기도 하다.

 

나가며

리스본 50조의 발동을 알리는 메이 영국총리의 서한이 EU의회에 전달됨에 따라 늦어도 5월부터는 EU와 영국의 본격적인 탈퇴협상이 전개될 예정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이 브렉시트는 그 시작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이미 치러진 선거결과와 앞으로 치러질 선거에서 이는 더욱 명확해질 것이다.

EU의 평화기획은 언뜻 성공적인 듯 보인다. 그러나 그들의 정치경제적 자유주의에 기반한 평화기획은 전지구적 경제위기와 함께 민족주의의 거센 저항에 직면하고 있다. 좌파 정치세력들은 이에 대항하기 위해 문제는 자본주의라고 외치고 있으나, 브렉시트 담론은 이미 반이민 담론에 포섭되었고, 유럽적 가치를 믿는 젊은이들에게는 외면당하며 그 정치력마저 상실할 위기에 처하고 말았다.

브렉시트 캠페인에서 좌파 정치가 간과한 것은 무엇인가? EU와 민족국가 간의 딜레마에서 과학적 실증적 요소에 집착한 나머지, 사회문화적 요소에 대한 간과라는 우를 범한 것은 아닐까? 이는 브렉시트에서 나타나는 극우적 경향에 대해 다시 한번 곰곰이 따져봐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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