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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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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다짐이 그저 꿈이 아니었음을...

 

김형석전북

 

전북추진위 시절 학습모임 날, 가방을 둘러메고 고영기 동지를 따라와 수줍게 인사하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늘 해맑은 미소로 동지들을 대했지만 투쟁 현장에서만큼은 앙다문 입술 사이로 결기가 느껴졌던 배현호 동지.

볕 좋던 날, 어두컴컴한 그의 자취방 침대맡에 나란히 기대 캔 맥주 마시며 좁은 방 가득히 수놓았던 담배연기. 그리고 이야기들.

결혼하면 뭐가 좋아요?’란 그의 물음에 슬픈 눈빛으로 말없이 허공에 담배연기를 날리는 나와 눈 마주쳐 깔깔 웃었던 기억. 그리고 그는 부사장과 경호원들 눈치보다 자신을 한심하게 바라보던 학우들의 그 비릿한 눈빛을 잊을 수 없다 했다. (당시 전북대학교에서 명사 초청특강이 있어서 현대차 부사장이 왔던 날, 배 동지는 들뜬 마음으로 그 곳을 찾았던 학우들 사이 홀로 정몽구 구속-사내하청 정규직 전환손팻말을 들고 1인 시위를 했었다.)

종종 내가 있던 가게에 찾아와 "김형석 동지, 저 밥 좀 먹고 가면 안 될까요."하며 환하게 웃던 그 모습이 떠오른다. (아프기 전)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활동가가 되고 싶다 했고, 미조직 사업장에 들어갈까도 했었는데, “제가 노동운동 하는걸 부모님께서 아직 모르는데 어떻게 할까요.”라며 한숨 짓던.

어느 날은 여동생이 결혼해서 올라가봐야 한다기에 마침 주머니에 있던 만 원짜리 지폐 몇 장 쥐어줬더니 손사래를 치며 다시 내 주머니에 우겨 넣고는 김형석 동지도 힘들잖아요.’ 멋쩍게 웃던 그였는데, 난 그의 고민에 선배로서 제대로 된 답도 해준 적 없고 투병생활 중 병원 한 번 못 찾아갔다. 이제는 자전거도 타고 몸이 좀 나아졌다며 전주엘 가면 순대국밥 그게 가끔 생각나니 사줄거죠? 그 마지막 통화를 끝으로.

오늘 아침 단톡방에서 네 소식 듣고 가슴이 철렁해서 무작정 밖으로 나가 하염없이 길을 걷는데 도무지 장례식장에 갈 엄두가 안 나더라. 그저 떠났구나, 갔구나 하며 덤덤한 척 하루 일과를 마치는데 불현듯 현호 너한테 너무너무 미안하고 밑도 끝도 없는 눈물이 나서 이렇게 몇 자 적어본다. 이렇게 조각난 기억들이라도 적어두지 않으면 시간이 지나 현호 네 기억이 점점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질까봐. 그땐 너한테 더 많이 미안해 질것 같아서..

배동지. 아니 현호야. 꼭 우리가 꿈꾸던 세상에서 다시 만나자. 그래서 우리 자주 가던 남부시장 순대국밥 집에서 소주 한 잔 하자. 그때 웃으며 이야기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 우리가 꿈꾸었던 날들이 결코 꿈이 아니었음을 말이야. 살아남은 동지들이 더 열심히 할게.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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