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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17.03.16 11:20

기본소득 논쟁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송명관참세상연구소()

 

지난 2012년 대선, 운동단체와 연구자들 사이에서만 머물렀던 기본소득 논쟁이 이제 점차 대중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점은 여론조사를 통해서도 확인되고 있다. 그런데 좀 아쉬운 건, 여전히 논쟁의 주된 축이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게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기본소득 논쟁의 가장 큰 축은 증세문제와 같은 재원마련이다. 그리고 주로 연구자들과 운동단체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논쟁으로서, 사회체제의 변혁과 이행을 둘러싼 논쟁이 있다. 전자는 매우 구체적인 정책단계 수준의 이야기이고, 후자는 매우 추상적인 이념 수준의 이야기이다. 그러다보니 이 둘의 간극 사이에서 기본소득을 이해하는 다양한 스펙트럼이 발생한다. “청년기본소득”, “여성기본소득등등의 제한적 기본소득은 사실 기본소득의 개념으로 따져보면 기본소득은 아니지만, 정치적 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한 방책으로서 널리 사용되기도 한다. 마치 임금주도성장론을 최저임금 인상을 위한 이론적 근거로 활용하는 것과 비슷하다.

 

기본소득인 듯, 기본소득 아닌, 그런데 문제는?

그런데 이런 기본소득 논쟁에서 짚어야 할 건, 이런 것들이 기본소득 원리에 부합하지 않는다라거나, 우파적 기본소득론을 경계해야 한다는 등에 있지 않다. 기본소득론이 대중적으로 회자되는 정세적 이유가 무엇인지 주목해야 한다. 왜 대중들이 기본소득에 호의적 반응을 보일까? 이게 꿈같이 좋은 얘기를 늘어놔서가 아니다. 실제 소득부족으로 인한 삶의 고통을 절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10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는 장기적인 경제침체 속에서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대중들의 환멸은 점점 더 깊어지고 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트럼프와 르펜 식의 보호무역주의와 반세계화 주장들이 대중들의 지지를 받으면서 급부상하고 있고, 이런 사회적 갈등이 기존 지배질서에 균열을 가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기본소득 논쟁에서 주목해야 하는 건, 증세를 둘러싼 숫자논쟁도 아니며, 변혁전망에 어울리는가를 따지는 것도 아니다. 이 논쟁을 대중적으로 확산시키고 있는 정치경제적 배경과 신자유주의적 관리체제의 위기에 주목해야 한다.

 

기본소득논쟁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자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논쟁에 대처해야 할까? 먼저 기본소득론의 토대를 닦았던 100년 전, ‘글리포드 H 더글라스라는 인물의 주장을 먼저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그는 당시 대형 기업체 100여개의 데이터를 수집한 결과, 기업들이 원가로 지급하는 임금과 배당의 합계액이 생산된 제품 가격의 총합에 항상 미달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것을 전체 경제로 확대시켜보면, 시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화폐(임금, 배당) 총량이 제품 가격 총합보다 항상 작기 때문에, 시장에서 구매되지 못하는 물건이 반드시 생겨날 수밖에 없다는 논리로 확장할 수 있다. 일종에 과소소비설과 유사하다. 이후 그는 이런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회신용이라는 두 가지 개혁프로그램을 제시했다. 하나는 구매력과 제품 가격 간의 괴리를 해소할 수 있도록 국민배당’(기본소득)을 실시하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로 인한 인플레이션의 가능성을 억제하기 위해 생산성 향상을 반영하는 가격 조정 메커니즘을 만들자는 것이다. 그는 이를 위해 공정가격개념을 제시했다.

우리가 눈여겨볼 대목은 바로 두 번째 인데, ‘공정가격개념에 근거한 가격 조정 메커니즘은 사실 탈시장화 혹은 생산의 사회화를 지향하는 것과 맥이 닿아 있다고 볼 수 있다. 시장가격에 대한 공급자(독점자본) 우위가 해소되지 못한다면, 대중들의 소득이 증가하더라도 그 구매력을 담보할 수 없게 된다. 조삼모사 같은 일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더글라스가 살았던 20세기 초보다 훨씬 더 향상된 기술과 사회제도를 가지고 있는 지금, 그가 제시했던 가격 조정 메커니즘의 실현 가능성은 더 크다. 이게 먼 나라 얘기가 아니다. 초등학교 의무교육을 보라. 우리는 이 공공 영역에서 탈시장적 방식으로 생산 및 분배체계가 운영되고 있다는 걸 이미 알고 있다. 가격 통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거품을 뺀 합리적 가격이라는 게, 자본주의 마케팅의 전유물이 아닌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현재 기본소득론과 복지국가론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세금 논쟁은 다소 협소한 틀에 갇혀 과잉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기본소득과 복지에 필요한 재원을 반드시 세금에 한정할 필요는 없다. 정말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 돈을 줘야 한다면, 적자재정을 통해서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리고 똑같이 나눠줄 필요도 없다. 궁핍한 사람의 빈곤을 해결하는 게 중요한 것이지, 균등분배의 원칙을 지키는 게 중요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는 돈만으로는 사태가 해결되는 게 아닌데, 마치 재원마련과 세금이 기본소득의 전부인양 회자되는 것이 문제다. 기본소득으로 배분된 돈이 구매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그 창시자조차 지적하지 않았었던가? 기본소득론과 생산의 사회화는 서로 대척점에 서 있는 게 아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이 둘이 가지고 있는 합리적 핵심을 어떻게 정세적으로 재구성할 것인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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