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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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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조금에 눈이 멀어 영혼까지 팔아치우려는가?

서울본부는 민주노조의 원칙을 저버려서는 안 된다

 

이성대(전교조서울지부 대외협력실장)서울

 

2016년은 박근혜 정권의 노동법개악 공세가 절정에 이르고 민주노총이 이를 맞받아 6, 7초 총파업·총력투쟁, 92차 총파업 투쟁, 10월 말 이후에는 박근혜 퇴진투쟁 국면이 본격화한 시기였다. 이러한 시기에 발생한 민주노총서울본부(이하 서울본부)의 서울시청 노동단체지원금 사용문제는 조직의 단결과 투쟁 전선에까지 해를 끼치고 있어 민주노총의 활동을 다시 한 번 성찰하고 조직 기풍을 바로 잡는 계기로 삼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보조금 수령 논란이 야기한 조직 갈등

서울본부는 박원순 서울시장과 노동특별시선언을 공동 추진하고 집행부, 운영위원회 차원의 간담회를 수 차례 갖는 등 협력 기조를 유지해 왔다. 2016년 들어 서울본부는 서울시로부터 총 15억 원의 보조금을 지원 받아 미조직·비정규직 조직화 사업을 추진하고자 했다.

사실 미조직·비정규직 노동자 조직화 사업은 정부 보조금과 관계없이 몇 년째 총연맹이나 서울본부가 꾸준히 전개해 왔던 사업이다. 보조금 사업에 대한 반대가 결코 미조직 조직화 사업에 대한 찬반이나 사업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의 차이는 아닌 것이다.

서울본부는 6월에 간담회를 갖고 민주노총 서울본부 미조직조직화 사업계획()’을 논의했다. 사업계획안에 따르면, 미조직조직화 TF를 구성하고, 조사사업, 조직사업, 상담사업, 선전홍보사업, 교육사업 등을 진행하며 예산은 추후 제출한다고 했다. ‘미조직 조직화 사업 계획+예산() 심의 건의 핵심은 사업 자체보다도 서울시 보조금 수령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5월 운영위나 6월 운영위는 이 문제를 제대로 토론하지 않았다. 서울시 보조금 사업이 강행되면서 본부 사무처장과 조직국장 1인이 사임하였고 지구협들에서 보조금을 받아서 진행하는 사업을 거부하기로 결정하는 등 급기야 조직 내 갈등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이런 가운데 서울시청으로부터 보조금을 수령하는 것에 반대하는 운영위원들 뿐만 아니라 제대로 집행해야 한다는 운영위원들이 보조금 사업을 중단시키기 위해 결집하기 시작하였고, 그 결실로 1118일 운영위원 27명 중 과반인 14명이 연서명한 입장서가 총연맹에 제출됐다. 서울본부와 민주노총 서울본부 바로세우기 실천행동’(이하 실천행동)이 징계 제청과 규율위 제소로 맞서면서 서울본부 운영위는 파행을 거듭했고 사태의 해결은 2017년 정기대의원대회에 기대를 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제 서울본부 사태는 본부장 등 상집위원에 대한 규율위의 권고가 316일 민주노총 중집에 전달되고, 320일 서울본부 대의원대회에서 안건 처리되어야 하는 상황을 앞두고 있다. 대의원 대회에서는 2016년 사업 평가, 2017년에 다시 보조금 20억 원을 받는 것을 포함하는 사업계획안에 대한 가부가 결정되어야 한다. 한편, 33일에 있었던 실천행동모임에서는 규율위원회의 결론을 토대로 향후 수습 방안을 논의하고, 운영위원들의 연명으로 민주노총 서울본부의 서울시 지원금사업으로 촉발된 비민주적 운영과 자주성 훼손을 규탄한다!”는 제하의 성명서를 채택하기로 결정했다.

 

노동조합의 자주성, 민주성, 투쟁성이 위기에 빠졌다

그럼에도 서울본부는 서울시 보조금 수령계획을 철회시킬 생각이 전혀 없는 듯 하다. 이같은 서울본부의 서울시 보조금 수령은 다음의 몇 가지 측면에서 매우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첫째, 조직의 자주성, 독립성을 심대하게 침해했다. 민주노총은 지난 2001년 대의원대회를 통해 국고 지원금 및 정부 지원금은 건물, 토지 등 부동산과 최소한의 관리유지비를 포함한 비용으로 한다고 정한 바 있다. 서울본부 전체 예산의 3배를 웃도는 총액 20억 원 규모의 서울시 노동단체지원금이 교부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서울본부는 세부사업별 시행계획을 서울시에 사전 제출하고 해당 사업이 공익성건전성에 부합하는 지 검증 절차를 거쳐 선별 지원 받게 된다. 뒤집어 말하면, 서울시의 감독과 개입을 열어놓는 조건으로 서울본부의 미조직 조직화 사업예산이 지원되는 것이다. 이같은 조건에서 서울본부의 미조직 조직화 사업이 자주성과 독립성을 유지할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

둘째, 조직 내 민주주의가 크게 훼손되었다. 직선제로 선출된 본부장이 상집위원들과 일부 운영위원들을 앞세워 운영위원회를 파행으로 몰아넣은 탓이다. 따라서, 막대한 보조금에 눈이 멀어 불투명하고 일방적인 방식으로 보조금 사업을 밀어붙인 서울본부의 행태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셋째, 오랜 기간 지켜왔던 민주노조운동의 기풍, 규율이 무너졌다. 정부로부터 매년 30억 원에 달하는 예산을 지원받고 있는 한국노총을 보라. 2015년에도 정부는 국고보조금을 무기로 한국노총의 노사정 합의를 종용한 바 있다. 정부나 지자체가 이른바 합리적 노사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이같은 지원금을 볼모로 삼는 행위가 비일비재했지만, 적어도 민주노총만큼은 정권과 자본으로부터 자주적인 노동조합의 기풍을 지키고자 부단히 노력해왔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 모두는 거대한 노동계급 앞에 서 있다. 원칙을 깨고 단결을 저해하는 행동들은 배신이 아닐 수 없다. 기강을 세우고 단결을 강화하는 일은 잘못된 일을 제대로 바로 잡으려는 노력이 쌓여서 이루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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