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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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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호 사회변혁노동자당 2017.03.16 10:22

노동은 촛불항쟁에서 무얼 남겼나?

탄핵 이후 새로운 세상 위해 계속 행동할 필요

주저하지 말고 과감하게 조직노동의 힘 사용해야

 

한국사회의 판도를 뒤흔들 정도로 촛불항쟁의 위세는 실로 놀라웠다. 이렇듯 촛불의 직접행동, 직접정치는 갈수록 넓고 깊어지고 있지만, 그 속에서 노동이 어떤 위치를 점유하고 있었는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당대의 항쟁에서 노동자운동이 미친 영향은 무엇이었으며, 또 어떤 한계와 과제를 남겼을까? 이에 대한 견해를 나누고자 조직노동자운동(서영우)과 지역운동(선지현), 청년운동(최원정)의 당사자들이 모여 당원 좌담회를 가졌다.

 

2017312() 오후5, 사회변혁노동자당 중앙당사


진행 김태연 사회변혁노동자당 투쟁연대위원장

대담 서영우 전북도당 자동차분회장, 선지현 충북도당 대표, 최원정 서울시당 이대분회

정리 임용현 기관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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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퇴진운동에 대한 소회

투표할 권리에서 소환할 권리로

누구나 거리낌 없이 얘기한다

내 문제로 절감하고 나선 게 원동력

 

김태연(이하 진행’)재벌권력의 최정점에 있는 이재용 구속에 이어, 촛불의 명령에도 끄떡 않던 박근혜까지 결국 청와대에서 끌어내렸다. 먼저 지난 4개월여 정권퇴진운동에 대한 소회를 이야기해달라.

선지현(이하 ’)제 기억엔 최순실 태블릿PC’ 보도가 작년 1024일이었는데, 불과 이틀 만에 민중총궐기 충북조직위가 구성됐다. 111일 첫 촛불 집회를 시작으로 매주 집회를 이어왔다. 지금까지 총25회차에 걸쳐 촛불을 진행했다. 놀라웠던 점은 충청권이 굉장히 보수적인 지역인데, 보통 2천 명 정도가 모이는 지역집회에서 이번 정국에는 최대 12천 명까지 모였다는 사실이다. 또 하나는 시민들의 호응이 우리 생각보다 훨씬 컸다는 점이다. 재벌문제에 관해서 이야기할 때에도 줄을 지어 서명운동에 참여할 정도였다. 이런 걸 보면서, ‘선거 때 투표할 권리로 형해화된 민주주의가 이번 촛불항쟁을 통해 권력자를 소환할 권리를 현실화했다는 점에서 과거와는 질적으로 다른 경험이지 않나 여겨진다.

최원정(이하 ’)청년운동, 학생운동을 하면서 제가 요즘 만나는 학생들도 이런 주제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것에 전혀 거리낌이 없다. 오히려 촛불 집회에 참석하지 못하면 굉장히 미안해 하고, 누구나 한 번 씩은 광장에 나오려는 분위기였다. 다만, 대학생들이나 청년들이 한 데 모일 만한 곳이 마땅치 않았던 듯 하다. 사실 대학생시국회의라는 깃발 아래 학생들이 많이 모여 있었지만, 그 곳보다는 뿔뿔이 흩어져 친구나 가족들과 함께 하는 청년들이 훨씬 많았고... 청년, 대학생이라는 (사회적) 정체성이 광장에서 동질감을 형성하기 위한 노력들은 조금 부족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서영우(이하 ’)정농단 사태가 터지고 나서 현대차 전주위원회는 토요일마다 전 조합원에게 문자를 보내고 적극적인 결합을 독려해왔다. 최근에는 조합원 교육을 진행 중인데, 제가 강의하면서도 이런 이야기를 자주 강조한다. “박근혜정권이 그동안 가장 극심하게 탄압했던 대상이 누구냐. 바로 우리 노동자들이었기 때문에 내 문제로 받아 안고 싸워야 한다.” 아무튼, 작년부터 회사가 정부 눈치를 보며 임금피크제, 신임금체계로 현장을 압박해왔었는데, 이를 조합원들이 절감하고 있었던 것도 촛불항쟁의 동력이 됐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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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연 사회변혁노동자당 투쟁연대위원장 서영우 전북도당 자동차분회장


광장투쟁에서 노동의 위치와 한계

노동에 대해 긍정할 수 있었던 계기

항쟁 초기 포문을 연 것은 조직노동

소극적인 태도로 스스로 입지 약화시켜

 

진행정권퇴진운동의 비약적인 상승기를 목도하기 전, 우리는 조직노동자운동이 먼저 박근혜 퇴진을 외치며 완강하게 싸움을 지속해온 것을 기억한다. 하지만, 노동이 광장투쟁의 중심에 확고하게 서 있었다고 보긴 어려운 것 같다. 우선 노동자들이 촛불항쟁에서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 각자의 의견 들어보겠다.

이번 국면을 계기로 학생 대중들은 노동자운동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러니까 2015년 민중총궐기나 이화여대 본관 농성 당시에는 이른바 운동권에 대한 선입견이 팽배했다. 그런데 촛불집회에서 노동자들의 발언을 들으면서,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들이 정말 심각하다는 공감대가 커진 것 같다.

그럼에도 노동자들의 문제와 자신의 처지를 분리해서 보려는 경향이 여전히 강했다고 생각한다. “지금 억압받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우리가 좀 더 힘이 돼야 할 것 같다.” 자꾸 이렇게 대상화시키다 보니, 어떤 면에서는 서로 다른 공간에서 겉도는 느낌도 있다.

청주에서 12천여 명이 모였을 때 조직노동자들의 비율은 상대적으로 적어 보일 수 있다. 그런데, 이 노동자들 가운데 상당수는 가족들과 함께 집회에 참석했다. 평상시에는 노동조합 깃발 아래 대오를 형성했던 노동자들이 가족들과 함께 광장에 나오면서 시민으로 호명되기도 하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통과된 이후 얼마간 촛불의 열기가 하강했던 국면도 되짚어봐야 한다. 충북지역의 경우엔 퇴진행동의 소속단체들과 노동자들이 그 자리를 지켜왔다. 정세가 고양됐을 때에는 이 싸움에서 조직노동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나 기여하는 바가 왜소해 보였지만, 실제 이러한 특성을 놓쳐서는 안 된다. 또 하나, 촛불항쟁은 대중의 자발성, 능동성이 두드러졌는데, 조직노동자들은 여전히 지침에 익숙했다. 게다가 정치적 민주주의와 자기 노동의 의제를 분리해서 바라보는 경향도 상당히 작용했던 듯 하다. 집회에 참여하는 시민들이 노동의 문제에 대해 거부감을 표시하는 경우는 굉장히 드물었는데, 오히려 조직노동은 자기 의제가 과잉될까봐 염려했던 것이다.

2008년 촛불 때도 노동자가 왜 중심에 서지 못했나. 그 때나 지금이나 조직된 노동자들이 광장과 거리에서 노동 문제에 대해 너무 소극적인 태도를 갖고 있다고 본다. 특히 조직노동자운동의 지도부가 좀 더 의지를 갖고 공세적으로 제기할 필요가 있다. 지도부의 의지에 따라 집단의 변화도 추동해낼 수 있다는 건 정말 크나큰 장점이자 힘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지금보다 더 집요하고 적극적일 필요가 있다. 정권은 바뀐다 하더라도 재벌 권력은 교체되지 않는 진실을 끊임없이 말해야 한다.

진행이제 노동자들이 촛불항쟁의 중심에 서지 못한 이유를 이야기해보자. 물론, 노동이 광장에서 일정하게 자기역할을 담지했었다는 사실은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2008년 촛불 때와 비교해보면, 노동자들의 위치나 활동은 현격히 달랐다. 2008년에는 사실 발붙일 여지도 없을 만큼 고립적인 상황이었는데, 이번 투쟁에서는 초반부터 그런 부분은 상당히 불식시켰다고 본다. 투쟁의 내용과 의제, 이런 성격을 보더라도 실은 노동 중심으로 수렴할 수 있는 정세였다. 일단 국정농단 사태 자체가 정경유착으로부터 발원하는 문제였기 때문에, 항쟁이 지속되는 과정에서 노동 의제가 부상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이 중심에 서지 못한 이유가 뭘까? 규모의 문제를 떠나 노동이 중심에 서려면 이 판에서 조직적인 투쟁이 벌어져야 가능하다. 그런데 1130일 민주노총 총파업이 실패한 게 컸다고 본다. 이 파업이 실패했더라도, 그 뒤 정세에 걸맞는 투쟁을 배치했어야 했다. 삼성본관 기습점거투쟁을 예로 들면, 만약 민주노총이 나섰다면 30명이 아니라 300명 정도 들어가는 것도 가능했을 것이다. 규모있는 결의대회나 파업투쟁, 이런 게 아니면 역동적인 정세에서 민주노총이 뭘 할 수 있을지 진지하게 검토했어야 하는데, 결과적으로 부족했다.

방금 제기하신 문제는 절반은 맞고 또 절반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노동이 그렇게 주변화된 상황이었는가? 실제로 2015년 민중총궐기, 그리고 민주노총의 노동개악저지 총파업 투쟁이 이 국면을 열어젖힌 바탕이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국면에서 일반대중들은 상당히 급진화되는 데 비해, 조직노동자운동은 정치화에 있어 괄목할 만한 진전을 못 보인 것이다. 이는 기존의 노동조합운동이 갖고 있던 조합주의의 한계들이 현 단계에서 질곡에 빠져있음을 보여준다. 작년 11월 한국지엠 노동자들이 중식시간에 박근혜 퇴진을 외치며 거리행진에 나섰던 게 참 인상적이었다. 저는 이런 노동자들의 행동이 전국에서 연쇄적으로 일어날 줄 알았는데 사실 그렇지 못했다.

 

체제의 근본 모순에 대한 저항 가능성

사회적 통제 가능성, 소유권의 문제 제기해야

누가 대통령 되든 착취와 탄압 여전할 것

탄핵에 머무르지 말고 한 발 더 나아가야


진행돌이켜보면 현 정국은 체제가 작동하는 원리를 압축적으로 보여줬다. 달리 생각하면 법전이나 교과서에서나 나왔던 헌법체계가 아주 완벽한 메커니즘 속에서 작동한 것이다. 부르주아민주주의가 철저하게 관철되는 상황이었는데, 예컨대 평화시위 프레임도 마찬가지다. 내용적으로 볼 때 아래로부터 대중투쟁으로 체제를 바꿀 맹아가 움텄다고 볼 수 있겠는가?

압도적 다수가 모였을 때 평화시위는 문제될 게 없다고 생각한다. 힘의 관계에서 지배자들을 완전히 압도했기 때문이다. 저는 이제껏 개헌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 없다. 그런데, 저들은 권력을 분점하는 방식으로 기득권 유지 차원에서 개헌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연인원 천육백만이 거리에 나와서 박근혜가 탄핵됐는데, 그 이유가 고작 기업의 재산권 침해라니. 이 체제의 근간이라고 하는 것들에 대해 대안적인 상상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대중들 스스로 이 사회를 통제할 수 있는 권리, 그 가능성에 대해 제기해볼 시점이다.

소위 문민정부가 출범하고, 또 이후에 김대중, 노무현정권이 들어섰다. 다들 세상이 바뀌고 민주화에 진전도 있으리라 기대했지만, 노동자에게는 똑같이 가혹했다. 이후 누가 대통령이 되든 권력의 본질은 변하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단지 노골적인 형태를 띠느냐 아니냐의 차이일 뿐, 지배자들이 자본의 친위대 역할을 하리라는 점에서는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이후 노동자들에 대한 탄압이 도래할 수밖에 없을텐데, 우리 나름대로 투쟁해왔던 경험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런 국면이 왔을 때 당당히 맞서 싸울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 변혁당이 그 점에 대해 앞장서서 제기하고 투쟁하자고 하면 좋겠다.

이번에 헌재 판결문을 보고 많은 청년학생들은 일단 탄핵됐다는 것에 안도하더라. 지금까지 우리가 보아왔던 이 정권의 범죄나 악행들을 헌재 판결이 전부 해소해주지 못했다고 본다. 하지만, 누군가 그 점에 대해 목소리 내지 않는다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탄핵이 됐다는 사실에만 만족하고 거기에 머무를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더 급진적인 이야기를 하고 우리 삶을 변화시킬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걸 계속 주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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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현 충북도당 대표 최원정 서울시당 이대분회


탄핵 이후 사회변혁투쟁 방안

고달픈 청년 현실 바꾸기위해 계속 행동하자

전체노동자와 함께 하는 투쟁 만들어야

운동의 계급성 회복 위해 진보운동도 노력해야


진행 876월 항쟁은 군부독재의 종식을 가져왔지만, 이것으로 노동자민중의 삶을 온전히 뒤바꿔낼 수는 없었다. 만약 지긋지긋한 현실을 바꿔보겠다는 노동대중의 열망이 없었다면 87년 노동자대투쟁도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박근혜 탄핵 이후, 어떻게 하면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혁하는 투쟁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지금 학생들이나 청년들의 현실은 여전히 나아진 게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자신감을 줄 수 있는 요소가 생기지 않으면 정말 어려울 것 같다. 물론 박근혜를 몰아낸 것은 긍정적으로 볼 수 있겠지만, 청년실업 문제나 대학사회의 고달픈 현실을 바꾸자고 요구하면서 거리에서 촛불을 들었다기 보다는, 정권의 부정부패 자체에 분노가 모아져서 나온 측면이 상대적으로 컸다고 본다. 특히 대학생들의 경우 시국선언을 조직하는 과정에서 시험기간에는 상당히 소극적이었던 것 같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당장 변화를 이끌어낼 만한 동력이 있다고 보긴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박근혜퇴진 이후에도 달라지지 않은 청년학생들의 현실을 바꿔내기 위해 계속 행동하자고 이야기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지 않을까.

저는 현대차노동조합이 과연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 거냐. 이 문제에 주목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사실 98년 정리해고 이후 현대차지부가 주도하는 투쟁들이 딱히 없었다. 이게 가장 큰 문제라고 본다. 이번에도 총파업 투표가 부결되긴 했지만, 현장에서 A/B조가 두 시간 파업을 진행했다. 그런데도 대기업노조가 자기 기득권에 사로잡혀서 이기적인 밥그릇 싸움에만 몰두한다고 비판하는 게 냉엄한 현실 아닌가. 이제 현장에서는 최저임금 1만원 쟁취 투쟁을 벌여나갈 예정이다. 아직 조합원들은 최임 1만원 요구에 대해 큰 관심이 없다. 그럼에도 이 요구를 강하게 내걸고 싸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손아귀에 쥘 수 있는 것만으로 싸움을 하려고만 든다면, 앞으로도 새로운 투쟁은 만들어낼 수 없다고 본다. 과거에 이동기 동지가 8명의 비정규직 동지들 해고를 저지하기 위해 특근 거부하고 투쟁했듯이, 우리가 갖고 있는 파업이라는 무기를 그렇게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주저하지 말고 과감하게.

동의한다. 가능성은 분명히 있다. 저임금불안정 노동자들이 스스로 떨쳐 일어나겠다고 선언했을 때, 조직노동자운동은 어떻게 반응할 것인 지가 관건 아니겠느냐.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신정부가 들어서면 구조조정 공세가 거세어지리라고 예상한다. 자칫 잘못하면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들, 또는 조직-미조직 노동자들 사이에 갈등과 분열을 초래할 수 있다. 이런 점에 대해 유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측면에서 민주노총도 계급대표성을 회복해야 한다. 한편으로는 노동자운동이 보다 정치화될 필요가 있다. 제도권 정치에 의존하고 종속되는 그간의 방식을 비판적으로 점검했으면 좋겠다. 이 과제를 오로지 노동조합에게만 요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최저임금 1만원 뿐만 아니라, 노조할 권리, 비정규직 철폐 이런 의제들을 통해서 근본적인 사회변화를 이끌어내는 투쟁을 진보진영의 활동가들이 함께 고민해야 한다.

진행오늘 노동이 촛불항쟁에 뭘 남겼는지 이야기해봤다. 그런데, 막상 얘기해놓고 보니 촛불항쟁이 역으로 노동에 남긴 게 많은 듯 하다. 이후 국면에 많은 변화가 있겠지만, 오늘의 고민을 발판 삼아 이후 투쟁을 어떻게 해나갈지 더 심도깊은 논의와 실천이 필요할 것 같다. 이상으로 대담 마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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