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가입

변혁정치

> 변혁정치

이슈┃이 돈으로 살아봐

 

 

문재인 정부

마지막 최저임금 결정…

 

최저임금 대폭 인상,

최소한의 요구다

 

 

백종성┃정책위원장

 

 

128_18.jpg

[사진: 노동과세계(백승호)]

 

 

지난 2017년 대선 당시 문재인‧유승민‧심상정 후보가 ‘2020년 최저임금 1만 원’ 공약을, 홍준표‧안철수 후보가 ‘2022년 1만 원’ 공약을 걸었다. 그러나 실제 최저임금 인상률은 2018년 16.4%, 2019년 10.9%, 2020년 2.87%, 2021년 1.5%에 불과하다. ‘2020년 최저임금 1만 원’ 공약은 애저녁에 깨졌고, 2021년 적용 최저임금 인상률은 이 제도를 도입한 1988년 이래 가장 낮다. 결국, 문재인 정부 4년 평균 최저임금 인상률은 7.7%로 박근혜 정부 7.4%와 별 차이가 없다.

 

더군다나 정부와 국회는 지난 2018년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확대하는 개악으로 정기상여금과 복리후생비를 최저임금에 포함했다. 이에 따라 2019년부터 산입범위가 단계적으로 확대되고 있으며, 2024년에는 정기상여금과 복리후생비 전액을 최저임금에 포함해서 계산한다. 기업은 최저임금 노동자의 ‘정기급여‧정기상여‧복리비 총액’을 전혀 인상하지 않거나, 심지어 삭감해도 최저임금법을 지킬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저임금 대폭 인상을 요구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2020년 6월 최저임금위원회가 발표한 <비혼단신근로자 실태생계비 분석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1인 가구 실태생계비는 월평균 218만 4,538원이다. 그러나 2021년 시간당 최저임금은 8,720원, 월 182만 2,480원에 불과하다. 미래를 설계하기는커녕 한 몸 건사하기에도 부족하다. 더군다나 생계비 지출 중 주거비(주거‧수도‧광열비) 비중은 20.3%로 가장 높다. 이런 상황에서 대폭적 최저임금 인상 요구는 ‘부동산값 폭등의 부담을 정부와 자본이 져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최저임금 망국론,

그 유구한 역사

 

상황이 이런데도 어김없이 ‘최저임금 망국론’이 흘러나온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이 발행한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시나리오별 고용규모>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8,720원인 최저임금이 5% 오르면 일자리가 10만 4천 개까지 줄고, 10% 오르면 20만 7천 개까지 줄어든다’고 한다. 15% 인상으로 ‘최저임금 1만 원’이 되면 일자리가 30만 4천 개까지 사라진다는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은 결국 노동자의 피해로 돌아오니 요구를 자제하자.’ 노동자는 자본의 조언을 수용해 최저임금 인상투쟁을 그만두어야 하는가?

그러나 최저임금 망국론의 역사는 최저임금제도의 역사와 같다. 최저임금제 도입 후 33년이 지났지만, 논리 역시 비슷하다. ‘최저임금 인상은 실업 증가로 이어져 결국 노동자에게 해롭다.’

 

도입 첫해인 1988년 1월 19일자 <매일경제> 칼럼 “최저임금제의 최고임금화”는 다음과 같이 ‘최저임금제 도입에 따른 대량실업 위험’을 논한다.

 

 

“최저임금제 실시는 거의 모든 나라에서 경제적 이유보다는 정치적 이유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왔다. 한국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이를테면 지난번 대통령 선거 때 대권주자들은 88년부터 실시할 예정이던 최저임금제를 두고 그 액수를 30만 원으로 내세웠다.… 필자는 부정적인 측면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최저임금제 실시는 어느 나라에서와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실업의 증가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이를테면, 지불능력이 7만 원 밖에 안되는 기업으로 하여금 11만 원을 주도록 한다면 사용자는 도산을 하거나 근로자를 해고시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1989년 적용 최저임금을 결정한 뒤인 1988년 10월 17일자 <경향신문> 기사 “최저임금 인상안에 반발 심해”는 중소자본의 대량폐업 우려는 물론 ‘공익위원들이 어용교수라는 비난을 듣지 않기 위해 최저임금을 대거 인상시켰다’는 관계당국자의 분노도 기록하고 있다.

 

 

“최저임금심의위원회가 최근 내년도 최저임금수준을 월 14만 4천 원으로 의결하자 관계당국이나 영세하청업자들은 ‘올해의 11만 5천 원보다 한꺼번에 26.3%나 올린 것은 무리한 요구’라면서 ‘이 같은 임금안이 강제 실현되면 결국 피해는 근로자들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주장.

 

이 같은 근거는 △상여금이나 시간외 수당 등을 합치면 최저임금이 실제로 월 22만 3천 원이나 되는데다 △전체제조업의 42%나 차지하고 있는 영세하청업체들이 이 정도의 임금부담을 감당하지 못할 것 등이라고.

 

한 관계당국자는 ‘전국의 1만 5천여 하청업체 가운데 절반 이상은 문을 닫게 될 것’이라면서 ‘이럴 경우 일자리를 잃은 근로자가 어디로 가겠느냐’고 안타까워하기도. 이 당국자는 ‘이 같은 결정을 내린 핵심인물은 6명의 대학교수로 구성된 공익위원’이라면서 ‘이들이 학생들로부터 어용교수란 비난을 듣지 않기 위해 현실을 무시한 채 결정을 내렸다’고 비판”

 

 

 

‘기업 지불능력 상승분 내에서

임금 인상을 요구하자’?

 

최저임금제 도입 이후 33년이 지난 지금까지 자본은 ‘너희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임금 인상 요구를 자제하라’라고 말한다. 자본이야 항상 이런 주장을 해왔으니 그렇다 치자. 문제는 ‘임금이 생산성에 종속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일부 노동운동 세력이다. “2022년 최저임금, 제도의 목적에 맞게 결정되어야”라는 사회진보연대의 입장을 보자.

 

 

“KDI 예측에 따르면 올해 성장률은 3.8%, 내년에는 3.0%이다. 올해는 수출이, 내년에는 민간소비가 성장을 이끈다고 한다. 최저임금은 민간소비와 관련된 업종에서 영향률이 크다. 작년, 올해보다 최저임금 인상률을 높여도 경제 상태가 여력이 된다는 의미이다.… 2020~22년 명목 성장률이 10% 정도고, 2020~21년 최저임금 인상률은 4.5% 정도였으니, 그 차이인 5%의 인상률은 충분하게 가능하다.… 생산성 향상 이상으로 최저임금이 상승할 경우 고용 축소라는 반작용이 커지기 때문이다. 노동자측 대표들이 2022년 최저임금을 1만 원 이상(약 15% 인상)으로 요구하는 건 과도하다.”

 

 

요약하면 ‘올해에는 최저임금 인상 요구를 걸어도 된다. 2022년 민간소비업 주도로 3.0% 성장이 예상되어, 최저임금 노동자가 다수인 민간소비업 자본의 지불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단, 자본가들의 반격으로 실업이 유발될 수 있으니 임금인상률은 경제성장률을 초과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결국, 임금투쟁을 경제성장률‧업종별 지불능력에 종속시키자는 것이다. 앞서 보았듯 이런 주장의 역사는 유구하다. 기업 지불능력 걱정, 국가재정 건전성 걱정은 사회진보연대가 하지 않아도 기재부와 산자부, 전경련과 경총이 열심히 하고 있다.

 

사회진보연대의 주장은 자본가들의 숙원인 ‘업종별 최저임금 차등적용’론과 전혀 다르지 않다. 또한, 이들의 주장에 따라 내년 경제성장률에 최저임금을 효과적으로 종속시키려면 우선 전문가들로 구간설정위원회를 만들고, 그 구간설정위원회가 제출한 한도 안에서 최저임금을 결정하게 될 것이다. 이 역시 최저임금 결정 방식에 대한 자본가들의 요구와 같다. 보다 근본적으로, 사회진보연대가 말한 취지에 따라 성장률에 임금을 종속시키자면, 번거롭게 내년 성장률을 예측하느라 KDI 보고서를 뒤지지 않아도 되는 방법이 있다. 바로 최저임금제 폐지다.

 

사회진보연대 말마따나 최저임금 인상이건 협약임금 인상이건, 자본은 어떻게든 임금 인상에 대응한다. 그 형태는 해고와 계약해지일 수도 있고, 폐업일 수도 있다. 노동 역시 자본의 공격에 대응한다. 그 요구는 총고용 보장과 해고금지일 수도 있고, 사내유보금 환수일 수도, 산업 국유화일 수도 있다. 노동자가 스스로 노동력을 판매해야 하는 한, 이 지난한 투쟁은 존재해야 하고 존재할 수밖에 없다. 사회진보연대는 다람쥐 쳇바퀴 굴리기에 지나지 않는 임금투쟁 대신 ‘체제를 향한 전 계급의 정치투쟁’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임금 인상폭은 기업의 지불능력 상승분을 초과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세력이, 체제에 맞선 정치투쟁을 주장하는 것은 희극에 지나지 않는다.

 

 

 

불평등 심화에 맞서야 한다

 

코로나 유행이 촉발한 위기가 가장 취약한 노동자들부터 희생시키고 있다는 것은 통계상 명확하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심화한 산업 불균등의 영향과 함께 대면서비스-여성-비정규노동자들이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다.

 

2020년 8월 OECD가 발행한 <한국경제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임금 양극화와 제한적인 재분배 정책으로 소득불평등도가 상대적으로 높다.… 대부분의 OECD 국가들에 비해 조세 및 복지정책을 통한 소득 재분배가 취약하다. 여성 고용률이 상대적으로 낮고 성별 임금격차는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코로나19로 인한 피해가 노동시장 지위가 가장 낮은 이들에게 집중되면서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

 

한국은행 역시 마찬가지 통계를 제시한다. <코로나19 위기 이후의 성장불균형 평가>에 따르면, “대면서비스업을 중심으로 매출과 고용이 감소하고 중소기업의 생산과 저소득 가계의 근로소득이 크게 줄어… 2020년 2/4분기 중 소득 4~5분위 가구의 근로‧사업소득이 전년 동기 대비 3.6~4.6% 감소에 그친 반면, 1분위 가구(최하층)의 소득은 17.2%나 감소하는 등 격차가 확대되었고, 3/4분기 중에는 고분위 가구의 소득이 전년 동기 수준으로 회복하였으나 1분위 가구소득은 10.4%의 감소”했다.

 

이렇듯 불평등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대폭적 최저임금 인상은 그야말로 최소의 요구다. 2021년 최저임금투쟁은 경제의 목적이 자본의 이윤이 아니라 대중의 필요충족임을 말하는 계기여야 한다. 

 

128_21.jpg

[사진: 노동과세계(백승호)]

© k2s0o1d6e0s8i2g7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