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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노조 없이 어떻게 살았지?’

  쿠팡 물류센터, 노조 깃발 뜨다   

 

 

쿠팡 물류센터 노동조합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이유

 

 

혜연┃인천(쿠팡노동자의 건강한 노동과 인권을 위한 대책위원회 활동가)

 

 

 

언젠가부터 우리는 영화나 TV 프로그램을 봐도 그 카메라 뒤의 노동자를 생각할 수 있게 됐고, 콜센터에 전화를 하면 전화기 너머 사람을 떠올릴 수 있게 됐다. 택배를 시키면 택배를 배송해주는 노동자도 생각한다. 나도 덩달아 상상력이 좀 더 좋아졌다고 생각했는데,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들을 보며 아직도 부족하다는 걸 깨달았다. 배송 그 너머에도 사람이 있다.

 

몇 년 전, 마켓컬리를 처음 이용하게 됐다. 아직 주변에서는 이 회사를 잘 모르던 시절이었다. 신세계였다. 아침 출근 전에 식재료를 배달해주다니. 퇴근이 늦어 밤늦게 들어오더라도 내 택배(특히 신선식품)가 문밖에서 더위에 지쳐 시들시들해질 일이 없는 게 아닌가. 나같이 퇴근이 늦고 주변에 장을 볼 시장이나 슈퍼도 없는 사람에겐 너무 유용한 것 같았다.

 

주문을 하고 아침에 현관문을 열면 어김없이 문 앞에 아이스박스가 놓여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할 일이 있어 새벽까지 깨어 있었는데 문밖에서 뭔가 소리가 났다. 잠시 긴장하다 조용해져서 살짝 문을 열어보니 아이스박스가 놓여 있는 게 아닌가. 새벽 2~3시경이었다. 그제야 생각했다. 아! 집집마다 아침 7시 전에 배송하려면 밤새 움직여야 하는구나.

 

그러다 전지현 씨가 TV에서 마켓컬리 광고를 하고, 쿠팡에서도 ‘로켓프레시’라며 신선식품 새벽배송 서비스가 나왔다. 그전에도 쿠팡 로켓배송은 2014년부터 이미 성행 중이었다. 그때도 ‘이용자가 많아 물량이 늘면 배송이 늦어지겠지’ 하고 막연히 생각했던 것 같은데, 역시나 천만의 말씀이었다.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물론 정말 피치 못한 상황에서 배송시간이 늦어지는 경우가 있겠지만, 그러면 고객들의 항의와 회사의 질책이 이어지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정말 숨도 쉬지 않고 움직여서 그날의 물량을 완수해야 한다.

 

우리가 쿠팡에서 온라인으로 상품을 주문하면,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들에게 실시간으로 작업 물량이 떨어진다. 집품(Picking) 공정 노동자가 주문서대로 물건을 골라 담으면, 포장(Packing) 공정 노동자가 박스/아이스박스 등으로 포장한다. 그 뒤엔 허브(Hub, 흔히 ‘상하차’로 불림) 공정에서 물건을 분류하고 차량에 싣는다. 이외에도 물류센터에는 여러 가지 일을 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청소, 보안 등은 용역업체에 외주화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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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pixabay]

 

 

 

쿠팡의 노동과정과

통제 방식

 

집품 공정은 엄청난 대형 창고에서 쇼핑을 한다고 상상하면 된다. ‘쇼핑’이라고 하면 말이 쉽지만, 축구장 몇 배 크기의 공간에서 하루 종일 시간에 쫓겨 종종거리다 보면 하루 3만 보도 거뜬히 넘긴다(가령, 물류센터 중에서도 큰 규모인 ‘메가센터’ 가운데 고양센터는 7층 규모-아파트 20층 높이-에 연면적 4만 평이라고 함). 그러면 포장 공정 노동자는 하루 종일 서서 떠내려오는 물품을 박스에 넣고, 포장하고, 박스째 들어 올리고 내리고를 반복한다. 상하차는 가장 힘든 공정 중 하나라고 하는데, 이렇게 포장된 박스들을 온종일 차량에 실어 올려야 한다. 여기까지가 물류센터 노동자의 일이다.

 

온라인 주문은 24시간 내내 주말도 없이 365일 가능하기 때문에, 주문이 몰려 물량이 급격하게 늘어나는 날에도 배송은 칼같이 당일 물량을 그날 안에 끝내야 한다. 일용직을 많이 써서 매일 인원을 조정하기도 하겠지만, 기본적으로는 노동자들을 닦달하게 된다. ‘시간당 업무량’을 ‘UPH’라고 하는데, 쿠팡은 모든 노동자의 UPH를 실시간 감시한다. 속도가 안 나오거나 중간중간 늦어지는 사람은 바로바로 확인해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방송으로 지적하거나, 관리자가 와서 큰 소리로 호통치듯 이야기한다. 화장실에 가기 힘든 이유가 이래서다. 화장실에 가느라 UPH가 떨어져도 사정을 봐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니 화장실 가는 것도 허락을 받아야 한다. 몇 번 왔다 갔다 하거나 오래 있으면 바로 눈치를 준다. 이런 혹독한 분위기 속에서 관리자의 작업지시에는 날카로운 고성과 반말이 섞이고, 무시와 인격모독이 스며든다.

 

각자의 UPH가 빠르다고 딱히 좋을 것도 없다. 개인들의 UPH가 빨라지면 전체 평균이 높아져, 어제와 똑같이 일해도 상대적인 UPH는 떨어진다. 결국 더 빠르게 무한경쟁을 해야 하고, 속도가 느린 ‘저성과자’는 여기저기로 팔려 다닌다. 그때그때 인원이 더 필요한 곳으로 사람을 배치하는데, 이것도 설명을 하거나 양해를 구하는 게 아니다. 자기 자리에서 일하다가 이유도 모른 채 불려가 다른 공정으로 배치되는 식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이동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꼭 ‘저성과자라서’만은 아닐 수 있지만, 많은 노동자가 그렇게 느낀다고 한다.

 

쿠팡 물류센터에서 노동자 과로사가 이어지고(지난 1년간 6명) 노동강도에 대한 비판 여론이 일자, 쿠팡은 UPH가 ‘개인을 통제하기 위한 게 아니’라고 변명하며 노동자들이 직접 UPH를 볼 수 없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런 땜질 처방은 노동자들을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UPH를 없앤 게 아니라, 노동자들 본인만 볼 수 없게 했기 때문이다.

 

UPH 외에도 노동강도를 높이는 중요한 요소가 저임금과 야간노동이다. 기본급이 최저임금 수준이라, 쿠팡에는 임금을 벌충하기 위해 야간만 고정으로 일하는 노동자가 많다. 시스템 자체가 교대근무가 아니라 오전조-오후조-야간조로 되어 있고, 야간조를 하다가 주간조를 하고 싶으면 퇴직금 정산하듯 신규로 들어가야 한다고 한다(센터별로 임금 등에 차이가 있어, 모든 센터의 시스템을 파악하지는 못함). 낮에는 다른 일을 하고 밤에는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하며 투잡, 쓰리잡을 뛰는 노동자도 많다.

 

이런 극심한 노동강도와 더불어, 사람이 아닌 제품을 위한 물류센터의 환경에서 노동자들은 건강할 수가 없다. 2020년 한 해 동안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하다 산재신청을 한 노동자 수는 239명, 승인받은 수는 224명이었다. 게다가 ‘산재 블랙리스트’ 정황이 있는 것을 보면, 해코지가 두려워 아예 신청하지 못하는 경우도 충분히 존재할 수 있기 때문에 실제 아프거나 다치는 노동자의 수는 드러나는 수치 이상일 것이라고 짐작해 볼 수 있다.

 

 

 

쪼개기 계약,

‘자유로움’을 가장한

‘심화된 불안정 고용’

 

‘노동자가 스스로 필요할 때 자유롭게 선택해서 일할 수 있다’고 선전하는 쿠팡 고용형태의 핵심은 ‘쪼개기 계약’이다. 대개 노동자들은 ‘쿠펀치’라는 앱을 통해 일용직으로 지원한다. 그러다 자리가 나면 3개월 계약직이 될 수 있다. 그다음에는 9개월 계약직, 또 그 뒤에는 12개월 계약직으로 이어진다(물론, 재계약에 성공한다는 전제하에). 쿠팡이 ‘상시직’이라고 이야기하는 건 정규직이 아니라, 바로 이 3 / 9 / 12개월 계약직이다. 이렇게 2년의 쪼개기 계약을 거친 노동자 중에서 극히 일부가 선별돼 무기계약직이 될 수 있다.

 

이러다 보니 노동자들은 ‘혹시 손이 느리거나 회사에 밉보이면 재계약이 안 될 수 있다’는 불안감에 휩싸이고, 부당하거나 열악한 노동조건에도 침묵할 수밖에 없다. 숱하게 드러나고 있는 인권침해, 과로사와 산재, 냉난방도 안 되는 환경이 여태껏 방치되는 이유다.

 

재계약 권한은 철저히 쿠팡의 손에 달려 있다. 노동자들은 그 기준을 알 수 없다고 말한다. 산재 요양기간에 해고된 노동자도 있고, 성희롱을 주변에 알렸다는 이유로 해고된 노동자도 있다. 일용직 노동자들은 매일매일 앱에서 근무를 지원해야 하고, 통보를 받아야 출근할 수 있다.

 

보통 일용직-3개월 계약직-9개월 계약직까지는 비교적 수월하게 올라갈 수 있다고 한다. 쿠팡측도 ‘크게 탈락자 없이 노동자들을 재계약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1년 계약직이 되는 것은 매우 어렵다. 1년 계약직은 이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될 수 있기 때문에, 9개월 → 1년 계약직으로의 재계약 과정에서 많은 노동자가 탈락한다. 재계약에 탈락한 노동자는 ‘계약해지’(곧 해고)되고, 이후 3개월 동안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할 수 없다. 물론 1년 계약직까지 올라가더라도 ‘정규직 또는 무기계약직 전환’은 불발될 가능성이 크다. 만약 그다음 단계로 올라가지 못하면, 역시 3개월 휴직 상태로 있거나 다른 일을 하다가 다시 일용직이나 3개월 계약직으로 들어와서 다시 2년간의 계약 연장 수순을 밟아야 한다.

 

해고된 노동자들이 법적 대응을 하자, 쿠팡은 2021년 4월 취업규칙을 변경해서 회사의 ‘계약갱신 거절 권한’을 명문화했다. 노동자에게 변경된 취업규칙 자료를 주지 않고, PPT로 설명한 후 동의 서명을 하도록 했다.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은 노동자의 동의 없이는 안 되지만, 당장 내일 출근이 아쉬운 노동자들이 서명을 안 할 수 있었을까.

 

 

 

‘첨단기업’의 노동조건은

과거로 회귀

 

쿠팡은 현재도 계속 급성장하고 있다. 전국 30개 도시에 150개 이상의 물류센터가 있고(연면적 축구장 400개 규모), 각 지자체와 투자유치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며 공격적 확장을 벌인다. 전북 완주군에는 축구장 14개 넓이(약 3만 평)에 천억 원을 투자해서 일자리 2천여 개를 창출하겠다 하고, 대구에는 축구장 46개 넓이(약 10만 평)에 3,200억 원을 투자해서 2,500여 개의 일자리가 생길 거라고 한다. 그 외에도 김천, 광주, 김해, 진해 등에 대규모 물류센터를 지어 2025년까지 전 국민이 쿠팡 물류센터에서 10km 이내에 있도록 만들겠다고 한다. 전 국민이 ‘쿠팡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게 쿠팡 총수 김범석의 꿈이라고 했다.

 

이렇게 생기는 일자리의 열악한 조건은 지금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할 리 없다. 양질의 일자리 보장이 아니라 화려한 숫자로 성과만 보이려고 기업에 특혜만 주는 지자체도 문제지만, 이런 일자리만 늘어나고 있는 오늘의 현실을 심각하게 돌아봐야 한다. 쿠팡 같은 온라인 배송 물류산업의 규모가 커질수록, 불안정-저임금 고용형태와 노동자들에 대한 통제는 더 강화될 것이다.

 

한편, 신규 건립 센터 가운데 ‘스마트’나 ‘첨단’ 같은 수식어를 달고 있는 센터는 쿠팡이 자체 개발한 물류 소프트웨어와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상품관리 및 작업자 동선 최적화 시스템, 친환경 포장 설비와 첨단 물류장비 등을 도입함으로써 센터 규모는 더 크지만 고용인원은 적다. 위에서 예로 든 완주와 대구센터의 규모를 비교해 보면 쉽게 드러난다. ‘첨단센터’인 대구는 완주에 비해 3배 정도의 면적이지만, 예상 고용인원은 1.25배에 그친다. 다른 제조업의 사례에서 보듯, 첨단‧자동화 현장에서 노동자들은 편하고 여유롭게 일하는 게 아니라 또 다른 종류의 위험과 스트레스에 노출된다.

 

기업은 첨단을 달리지만 노동조건은 과거로 회귀하고, 노동자 삶의 질은 하향 평준화된다. 야간노동을 줄이자고 그렇게 힘든 투쟁을 해왔건만, 또 다른 산업에서 야간노동은 더욱 활성화된다.

 

다시, 편리함 뒤에 감춰진 노동을 생각해보자. 우리가 노동자의 권리를 간과하고 소비자로서의 편리함만 쫓는 순간, 또 다른 곳에서 나의 노동도 그렇게 취급될 것이다. 쉽지 않은 결단을 내린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들의 노동조합 설립을 진심으로 지지한다. 누구나 건강하고 행복하게 노동하기 위해, 우리 모두의 고민이 필요한 때다. 나는 일단 쿠팡과 마켓컬리 앱을 지웠다. 쿠팡 총수의 바람과 달리, 나는 ‘쿠팡 없이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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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공공운수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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