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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형 일자리는 

무엇을 노리는가?

 

이주용정책선전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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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의 생산계획에 따라 현대차 로고가 박힌 자동차를 만든다는데 공장도, 노동자도 현대차 소속이 아니다. 현대차 직영공장이 아니라는 이유로 노동자들은 정규직 대비 반값 연봉을 받는다. 사실 새로운 일도 아니다. 지난 2001, 현대차그룹은 100% 비정규직으로 채워진 별도 위탁생산공장을 설립해 노동자들의 임금을 후려치고 노동강도를 살인적으로 끌어올리면서 물량과 이윤을 뽑아냈다. 기아차 이름을 달고 나오는 경승용차 모닝레이를 생산하는 공장, ‘동희오토. 자본에겐 꿈같은 이 기획이 현재 새 이름을 얻어 다시 추진되고 있다. 바로 광주형 일자리.

최근 정부여당이 광주형 일자리 기획을 성사시키는 데 급격하게 속도를 내며 힘을 쏟고 있다. 광주시 보도자료에 따르면 이미 현대차와 협상이 막바지에 이르렀고, 관련 예산 확보를 위해 11월 국회의 예산심사가 마무리되기 전에 협약을 체결하겠다고 한다. 지난 10월 말에는 민주당 이해찬 대표와 홍영표 원내대표 및 최고위원단 등 당 지도부가 광주에 총출동해 광주형 일자리를 매듭지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115일 출범한 여··정 상설협의체에서는 규제완화, 탄력근로제 확대와 함께 광주형 일자리 추진에 초당적으로 협력한다는 다짐도 받았다. 정부여당은 광주형 일자리가 심각한 실업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대책이라고 주장하면서, ‘노동자들에게 바닥을 향한 경쟁을 강요한다는 반발을 묵살하고 있다. 과연 자본을 위한 꿈의 공장은 장밋빛 일자리 전망을 펼쳐줄 수 있을까?

 

자본을 위해 차려진 잔칫상, 위탁생산공장

광주형 일자리는 그 계획이 지속적으로 바뀐 데다 최근 광주시와 현대차 사이의 협상내용도 비공개다. 다만 광주시가 발표한 모델 등을 통해 드러난 일관된 핵심은 있다. 현대차그룹의 투자를 끌어들여 완성차공장을 세우되 직영이 아니라 별도 위탁생산공장으로 설립하고, 노동자들의 임금체계는 연봉 3~4천만 원대로 설계하는 동시에 임금상승을 억제하며, 이를 ···정 대타협혹은 노사상생형 일자리로 포장한다는 점이다.

광주시가 발표한 광주형 일자리 선도모델 적용방안(이하 적용방안’)을 보면 새로 설립할 공장은 완성차 자회사 또는 독립법인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야하며, “완성차의 본사 또는 모공장을 중심으로 하는 유형은 가능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애당초 직영공장을 배제하고 별도법인으로 정해놓은 것인데, 현재 광주시와 현대차는 자본금을 일정 비율로 분담해 광주시가 1대 주주, 현대차를 2대 주주로 하는 공장 설립방안을 협의하고 있다. 굳이 직영공장 방안을 배제한 이유는 무엇일까? “기존 대기업의 추가공장 건설인 경우 임금을 포함한 노동조건은 기존 단체협약의 적용을 받기 때문에 혁신적 제도들을 도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 기존 현대기아차 노동자들의 단체협약을 적용하지 않고 완전히 다른 임금체계와 노동조건을 설계하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광주형 일자리에 적용하겠다는 혁신적 제도란 무엇인가?** 바로 노동시간 유연화와 임금체계 개편이다. 광주시의 적용방안에 따르면 노동시간을 주40시간으로 제한하되 연장근로가 필요할 경우 탄력근로제를 적극 활용하고, 연장근로에 대해서는 수당이 아닌 휴가로 보상함으로써 연장근로 수당을 절감한다. 임금체계의 경우 연공급제를 직무급제로 대체한다. ‘근속이 계속될수록 임금이 상승하는 문제를 완화해야 한다며, 직무급제를 도입해 노동자들을 직무평가에 따라 분할하고 임금수준을 체계적으로 낮게 관리한다.

만약 노동자들이 애초의 설계를 거부하고 임금과 노동조건의 개선을 요구하며 투쟁한다면 어떨까? 광주형 일자리는 자본을 위해 친절하게도 그 대응방법까지 마련해주고 있다. 여기에서 바로 노···정 대타협에 근거한 사회적 압력이 수단으로 제시된다. 이른바 적정임금선에서 임금수준을 억제하도록 사회협약을 맺고 개별 노동조합의 교섭권한을 통제한다. ‘임금격차 해소를 핑계로 반값 연봉을 강제하면서, 노동조합의 투쟁을 노···정 협약으로 억제하는 것. 이것이 사회적 합의를 통한 광주형 일자리의 요체인 것이다.

 

어떤 일자리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재벌의 이윤축적을 겨냥해야 한다

반값 연봉이면 어떠냐, 어쨌든 일자리가 생기면 좋은 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다. 문제는 현재 자동차산업이 과잉생산으로 인한 업황 부진에 시달리고 있다는 점이다. 이 상황에서 공적 자금까지 투입해 추가로 공장을 지어 과잉생산에 뛰어드는 것이 지속가능하고 바람직한가를 되물어야 한다. 광주형 완성차공장의 위상은 계속 바뀌었다. 처음에는 기존 기아차 광주공장(62만 대 생산능력 보유)과 연동해 추가로 38만 대를 생산하는 공장을 증설해서 연간 100만 대 생산기지를 만들겠다는 구상이었다. 그러나 기아차가 참여하지 않으면서 이 계획은 무산되었고, 이후 친환경 전기차 공장을 제시하다가 현재는 경형 SUV 10만 대 생산공장으로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금속노조 현대차지부에 따르면 국내 경차시장은 연간 14만 대 수준이며 이조차 계속 하락하고 있다. 그렇다면 광주형 공장에서 생산한다는 연간 10만 대 추가물량은 과잉생산을 심화시킬 공산이 크다.

일자리를 늘리는 것은 필요하다. 문제는 어떤 일자리를 어떻게 만들 것이냐다. 30대 재벌 사내유보금이 883조 원을 넘어서고, 이 가운데 현대차그룹이 보유한 액수만 135조 원에 달한다. 광주시가 밝힌 바에 따르면 광주형 자동차공장으로 창출할 일자리가 약 1천~15백 명 규모로 추산되는데, 현재 현대차와 기아차에만 비정규직 16천 명이 있고 이들은 법원에서 수차례 불법파견 판정까지 받았다. 현대기아차는 고용을 늘리지 않고 비정규직 일부를 선별적으로 채용하는 꼼수만 부려왔다. 여기에는 물론 기아차 광주공장도 포함된다. 천문학적 사내유보금을 비롯해 계속 축적되는 이윤을 재벌 곳간에 쌓아둘 게 아니라 양질의 일자리를 위해 활용한다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노동시간을 줄이면서 임금과 노동조건의 저하 없이 일자리를 늘릴 수도 있는 것이다.

지역일자리 창출을 위해 공적 자금을 투입하고자 한다면, 국가나 지역공동체의 책임 하에 사회적으로 필요한 재화나 서비스를 생산하는 일자리를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추진하는 광주형 일자리는 공적 자금으로 재벌의 위탁생산공장을 지어주고 사회적 필요와 무관한 과잉생산에 투입하면서, 노동자들의 임금과 권리까지 틀어막는다. 재벌은 정부가 마련해준 판에 들어와 이윤만 뽑아먹는다.

정부와 자본, 언론은 청년실업자들과 기존 정규직 노동자들을 대립시키며 정규직 노동자들이 이기주의를 앞세워 광주형 일자리에 반대한다고 비난하고 있다. 그러나 정규직 일자리를 없애며 이윤을 축적한 것은 재벌이었다. 재벌의 이윤을 통제하고 이를 활용해 양질의 일자리를 확대하자는 투쟁을 노동자들이 앞장서 전개할 때, 비로소 재벌특혜로 점철된 정부의 일자리대책을 거부하고 청년실업자와 기존 노동자 사이에 조장된 분열도 극복할 단초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박해광, “광주형 일자리란 무엇인가?” 광주광역시 사회통합지원센터 연구보고서. 김경근, “광주형 일자리 논의의 쟁점과 민주노조운동의 대응 방향”, 금속노조 연구원 이슈페이퍼 2018-07에서 재인용.

** 이하 두 문단의 구체적인 내용은 광주광역시·워크인조직혁신연구소, “친환경전기자동차 중심 광주형 일자리 선도모델 적용방안 연구<내용 요약>”, 2018.4.4.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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